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씨 Nov 30. 2022

포기하지 않는다면

마오리 소포라처럼

거리를 걸었다. 낙엽이 떨어졌다. 나는 시를 전공했다. 처음 읽었던 나희덕 시인의 시를 읽고 짧은 운율로 온 몸에 전율을 불러오는 시의 매력에 빠졌다. 시를 전공하면서 제일 뿌듯했던 점은 교수님과의 술자리였다. 교수님은 나에게 ‘발이 이미 빠졌다.’고 말했다. 성적을 맞춰서 지원했을 뿐인데, 사실은 내가 시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멋대로 오해를 해버렸다. 그 오해로 대학시절 내내 시에 빠진 문학소녀처럼 행동하고 다녔다.


착각의 늪은 바닥도 없었다. 나는 대학원을 진학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현실을 나를 취업으로 이끌었다. 일을 하면서 시를 놓지 않았다. 신춘문예에 지원했고 백일장을 다녔으며 공모전에 응모했다. 번번히 떨어졌다.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답답함에 몸부림쳤다. ‘나를 알아봐 주지 않다니!’ 운이 없음을 탓했다. 한 번도 나를 탓한 적은 없었다. 몇 해를 목마른 사람처럼 지독하게 시를 써내려 갔다. 어둡지만 진실되고, 투명한 유리창처럼 솔직한 시는 나의 그림자였다. 시집을 발매한 아류작가들에게 코웃음을 쳤고 등단만 하면 세상이 나를 우러러볼 것만 같은 느낌에 홀로 오리 속의 백조처럼 자부심을 느꼈다.  자부심은 느꼈지만 번번히 떨어졌기 때문에 자신감은 없었다. 그래서 시인들의 시집을 짜냈다. 한 줄, 한 줄 나의 문체가 아닌 시인들의 문체를 모방했다. 그럴 듯한 시가 나왔지만 만족스러운 적은 없었다. 애초에 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것은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쳤다.


스스로에게 백기를 들었다. 나는 교수님의 말처럼 그저 ‘발이 빠졌다’ 한 것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온 몸이 적셔지기를 원했던 내가 얼마나 치졸한지 깨달았다. 졸업 후 10년만에 교수님께 다시 메일을 보냈다. 여태까지 쓴 표절 시를 보내주면서 ‘마지막’이라고 표현했다. 답변이 왔지만 볼 수 없었다. 용기가 없었다. 내 존재가 다이아가 아닌 모조품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푸라기 같은 기다란 줄이 있다면 거리낌없이 잡고 싶었다. 나의 성공이야기를 떠들고 싶었다. 열심히만 한다면 누구나 다 나처럼 될 수 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가식의 삶, 어쩌면 내가 바라는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등단만 하면, 등단을 할 수만 있다면! 미친듯이 집착했던 시절이었다.


자괴감에 흡수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무렵 동생에게 선물을 받았다. 앙상한 가지에 초록색 알맹이처럼 작고 작은 잎이 돋아난 마오리소포라였다. 첫 인상이 썩 좋지 못했다. 너 참 삭막하구나. 책상 한 켠에 아무렇게 두었다. 며칠이 지나고 저 좀 돌봐주라고 항의라도 하는 듯 작은 잎들을 떨구었다. 종이컵 하나 가득 물을 주었다. 또 며칠이 지나니 개미만큼 작은 녹두색 잎들이 돋았다. 그 후 마오리소포라에게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은 기존 잎보다 커다란 잎이 생겼다. 좋은 현상인 줄 알았으나 웃자람 현상이라고 한다. 웃자라는 이유로는 햇빛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빛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잎을 넓혔던 것이다. 그래서 단단한 기존 잎들과 다르게 얇다. 비정상적인 성장이면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그냥 내버려 둔다면 식물 전체의 영향 불균형을 가져오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다. 햇볕에 목마른 넓어진 잎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쩐지 그 몸부림은 나를 닮았다 생각했다. 


인터넷을 뒤져 마오리소포라에 대해 알아보았다. 뉴질랜드 야생화로 마오리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아 ‘마오리소포라’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과습과 통풍에 신경을 써야 하고 음지보다는 양지가 좋다고 한다. 나는 마오리소포라를 책상 한 켠에서 창가로 옮겨주었다. 블라인드도 살짝 걷어내고 창문도 열어 두었다. 두 뺨에 닿는 쌀쌀한 밤공기가 기분이 좋았다. 


마오리소포라가 죽은 잎을 떨구고 새 잎을 틔우기를 반복했다. 새로 돋아난 잎은 더 반짝이고 짙은 색을 뽐냈다. 이처럼 꾸밈없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과거의 나는 달리는 자동차의 엔진과 같았다. 나를 바쳐주는 든든한 하부도 없고 같이 달리는 타이어도 없었다. 그저 뜨겁게 달구어진 엔진으로 달리고 싶은 욕구만 가득했다. 그래서 달리지 못한 현실에 좌절하고 망가졌던 것이다. 사실 내가 시를 쓰고 싶어했던 이유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번도 나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공장처럼 시를 찍어내려고 하니 한계에 다다랐고 급기야 남의 것을 가져오는 만행을 저질렀다. 웃자란 잎처럼 오만으로 얼룩진 마음이 스멀스멀 커졌던 것이다. 한바탕 가지치기가 되어 잘려 나간 후 나를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고물상으로 넘어갈 날만 기다리는 식은 엔진이 든든한 하부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가가려 한다. 마오리소포라를 관찰했던 것처럼 삶을 깊게 들여다보며 한 줄, 한 줄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말이다. 


마오리소포라는 봄에 노란 꽃을 피워낸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힘껏 피워낸다. 앵무새의 부리를 닮은 꽃이 나의 마오리소포라에게도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마오리소포라의 꽃을 닮은 나의 글을 피워낼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롭게 뻗어내는 가지처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쓰려고 한다. 기대하고 있다. 나의 겨울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견뎌내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내 안에서도 작은 싹이 꿈틀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