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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씨 Dec 01. 2022

시간의 연속성

나의 고양이에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우물이 있다.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나 조차도 들어갈 수 없다. 나는 그 우물에 좋아하는 색 물감을 뿌려 넣기도 하고 구름처럼 보드라운 꽃을 꺾어 넣어두기도 했다. 한 때 내가 싫어하는 아이의 이름도 넣었다. 우물은 보통 소나무 그림자에 숨어있는데 어느 날은 끈적한 거미줄로 둘러 쌓여 있다가 어느 날은 커다란 물방울 속에 갇혀 있기도 했다. 우물은 나의 과거이다.


나에게는 잊고 싶지만 잊고 싶지 않은 우물이 있다. 이것은 나의 첫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앞에서 병아리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병아리는 작고 귀여워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저씨는 병아리를 하얀 봉지에 담아주었고 하교하는 아이들 손에는 그 하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다섯 마리를 샀다. 다섯 마리를 사니 아저씨가 사료를 공짜로 주었다. 봉지 속 다섯 마리 병아리는 노란 물감을 뭉쳐 놓은 것 같기도 했고 민들레 꽃잎을 하나씩 따서 짓이겨 놓은 모양새처럼 생겼다. 


다섯 마리의 병아리를 보고 엄마는 경악했고 동생은 좋아했다. 커다란 상자를 주워 와 공짜 사료와 물과 함께 병아리를 넣어두었다. 벌써 한 마리의 고개가 자꾸만 아래로 쳐졌다. 저녁에 아빠가 보더니 따뜻한 방석과 조명을 켜주었다. 그렇게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잘 살았다. 병아리가 있는 시간만큼은 봄처럼 따스했다. 시간이 흐르고 병아리들은 자꾸 날갯짓을 하더니 상자를 탈출했다. 노란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흰 털이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베란다에서 키웠다. 그런데 그 후부터 자꾸 한마리씩 사라졌다. 그것이 길고양이의 소행이라는 것을 4마리가 없어진 후에 알게 되었다. 그것이 어린 시절 나에게 각인된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다. 동생은 어디서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 받아왔다. 5개월 된 샴 고양이었고 5만원을 줬다고 했다. 당시 개를 키우는 집은 많아도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별로 없었다. 고양이는 개처럼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도 아니고 훈련을 통해서 교감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별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2년 후 나는 기숙사를 나와 첫 자취를 시작했다.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점점 바위를 감싸는 이끼처럼 외로움이 나에게 뿌리내렸다. 그래서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고양이는 조금 더 커져 있었고 크림색 대신 초콜릿처럼 어두운 갈색 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숨을 쉬는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혼자 있는 것보다 나았다. 그러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하였는가, 점점 내 물건보다 고양이 물건이 더 많아졌다. 함께 한 시간이 쌓일 수록 고양이에게 물들고 있었다. 그것은 뙤약볕아래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저항할 수 없었다. 일어나고 잠을 자기까지 내 시선의 끝에는 항상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에 뛰어들었다. 사회 초년생인 나는 급여나 복지에 대해 따질 수 없었고 써주는 곳에 허리를 숙여 들어갔다. 집에서부터 회사까지 버스를 타면 40분이 걸렸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고 잡일을 도맡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신경 써야했다. 실수하는 날에는 눈치가 백배로 보였다. 매일 피곤에 절여졌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고양이의 존재가 귀찮다고 생각되었다. 


매일 밤을 지푸라기처럼 아무렇게 널려 자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어린 아이처럼 소리내 엉엉 울었다. 그 때 고양이가 다가와 살며시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슬쩍 고양이를 쳐다보니 맑고 커다란 눈을 껌벅 감았다 떴다. 허공에서 마주치는 시선은 나를 편안함으로 안내했다. 고양이와 닿아 있는 나의 몸 일부에서부터 노곤함이 번졌다. 그 작은 행동은 나에게 위로가 되면서 귀찮게 생각했던 사실이 너무 미안해서 더 울었다. 익숙함이 독이 되어 눈을 멀게 했다. 다시는 너를 곁에 두고 무너지지 않겠다 다짐했다. 


다음날 사직서를 제출했고 퇴직금과 적금을 모아 채광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밝은 빛처럼 우리의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고양이에게 이상증상이 생겼다. 가만히 있는데도 전속력으로 달린 사람처럼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려는 것이다. 밤새 인터넷을 뒤져가며 원인을 찾았다.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심장병이 의심된다며 더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 받을 것을 권유했다. 당시 차가 있는 동생에게 연락했다. 마침 동생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대학동물병원이 있었다. 그날 밤 고양이를 보냈다. 나는 동생에게 전화가 올 때까지 고양이 심장병에 대해 알아보았다. 누구는 시한부라고 표현했고 누구는 평생 약을 먹고 관리하면 오래 살 수 있다고도 말했다. 고양이 알약 먹이는 방법도 숙지했다. 대학동물병원은 비싸서 적금 해지도 염두해두고 있었다. 모든 고민은 동생의 전화 한 통으로 무너졌다.


쇼크사.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그 단어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날을 우물 가장 안쪽에 묻어두었다. 마지막으로 너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마지막으로 너를 안아주지 못했고 차가운 동물병원에 버린 것을 매일 밤의 그림자를 깎아내며 미련을 쌓아 두었다. 속이 텅 비어 있는 나무가 되어 깎아내고 깎아냈다. 몇 해를 보내니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먼 훗날, 먼저간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 너머로 마중 온 단다.’

이 말이 좋았다. 나의 고양이에게 아직 못 다 준 마음 한 아름 안고 가겠다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우물이 있다.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나 조차도 들어갈 수 없다. 우물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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