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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씨 Dec 03. 2022

사랑꾼? 사냥꾼?

잡혀버린 포로

사랑꾼과 사냥꾼은 한 글자 차이인데 그 뜻은 완전히 다르다. 사랑꾼은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고 사냥꾼은 사냥하는 사람이다. 내가 알던 애인이 사랑꾼의 모습을 한 사냥꾼이었다면 나는 사랑꾼의 포로인가, 사냥꾼의 포로인가.


쌉싸름한 바람이 분다. 연약한 생명이 잠드는 겨울이 찾아왔다. 문득 애인과 나눴던 10년전 약속이 떠올랐다. 그것은 오렌지 사탕처럼 달콤했고 식상했다. 10년 전 우리는 해가 들어오지 않은 반지하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한기가 울컥 창문을 비집고 들어올 때도 서로 껴안고 있었다. 이따금 애인은 나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말했고 어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맹세가 심장을 조이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열렬하게 사랑을 했다. 


10년의 연애는 푹 삶은 가지처럼 늘어지고 먼지 쌓인 보석함 같았다. 우린 때때로 햇볕에 잘 말린 이불이 되었다가 비가 오면 생기는 웅덩이 같았고 바람을 막아주는 텐트가 되기도 했다. 간혹 불어 터진 라면처럼 하찮은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사회가 만든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느 날, 애인이 고백했다. 개인 회생 중이라고. 나는 물먹은 솜인형처럼 침묵했다. 위로의 말이나 응원의 말 따위 할 수 없었다. 모아둔 돈은 없어도 신혼부부특혜로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저금리 대출을 생각했다. 나에게 개인 회생은 인터넷 광고에서만 보던 단어였고 뉴스에서 떠드는 이슈거리일 뿐이었다. 쫀득한 캐러멜을 씹다가 치아가 깨진 기분이었다. 애인은 조용히 한마디 곁들었다. ‘나 버리지 마.’ 소름 돋는 복선이었다.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내가 사인한 사랑의 맹세는 결국 내 심장을 터트리고 말았다. 애인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 최고의 사냥꾼이었다.


애인과 나는 몇 해를 함께 살기도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동그라미에서 맞물려진 톱니바퀴가 되어가는 것처럼 많이 다투기도 했고 갈구하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맞춰진 퍼즐이었다. 단순히 삶을 공유한 것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로의 일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나의 자아 한 부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애인의 고백과 함께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독한 덫에 걸린 것은 아닌지. 그저 내가 돈을 밝히는 속물인 것은 아닌지. 잠깐 나를 변호해보자면 돈이 많은 것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허덕이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구차하게 원룸에서 부부로서 첫출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둘이 모였는데 재정이 마이너스라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랑을 버릴 속물인 것인가. 돈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 나쁜 것일까. 화장실의 옥색 천장을 보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뿌옇게 부푼 시야는 마치 내 미래 같았다. 


애인은 한심했고 불쌍했다. 옅은 분홍빛 구름 같은 환상은 깨졌다. 조건이 붙으니 현실이었고 현실은 사랑을 의심하게 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못났고 고개 꺾인 강아지풀처럼 초라했다. 콩깍지가 벗겨진 시야로 보는 애인은 한 마디로 볼품없었다. 한 편으로는 10년 동안 날 속인 것은 아닐까 무섭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의미없이 녹음된 테이프처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인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매일 저녁밥을 해주고 함께 산책했다. 주말에는 맛집을 찾아와 함께 가자고 했고 퇴근하면 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다 주기도 했다. 터진 심장이 냉탕과 온탕을 돌아다니느라 쪼그라진 손가락처럼 간질거렸다. 


나는 한 때 취업실패로 스트레스성 폭식이 와 몸무게가 두배로 불어난 적이 있다. 우울증까지 찾아와 매일매일 가라앉던 나를 애인이 끌어올려주었다. 병원도 함께 다녔고 운동도 함께 했다. 돌이켜보면 겉모습이 달라져도 신경질 부려도 애인은 늘 다정했고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응원해주었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하얀 벽에 곰팡이로 뒤덮이면 골칫덩어리 곰팡이밖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돈이 없다고 사랑을 버리려고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개인 회생은 신용 회복을 돕기 위한 제도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사냥감이었다는 것도 착각이었다.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날 좋아하고 있다. 혼자 왜 그렇게 멀리 가버린 것인지는 추궁하지도 않았다. 짐은 나눠 가지면 되는 것이다. 잘난 것 없는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사랑의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을 말한다. 애초에 돈이 마음보다 앞설 수는 없다.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온다. 벽에서 자라는 그림자가 길어졌다. 우리는 파도에 깎인 조약돌처럼 둥글둥글하게 살기로 했다. 서로가 첫 눈에 반했던 그때보다 몽글몽글한 사랑이 조금 익었고 철없는 아이들이 조금 컸다. 서로의 앞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서있다. 우리는 찰흙처럼 뭉쳐지지도 물감처럼 섞이지도 않았지만, 뜨겁게 달군 쇳물처럼 서로를 녹이고 있다. 마음 한 켠에 쌓인 한숨들이 아지랑이처럼 새어 나간다. 우리의 새로운 연애 2막이 지금 막 열리고 있다. 


오랜만에 함께 낮잠을 잤다. 오동통한 아기 손 같은 햇살이 나를 깨웠다. 살짝 얼린 홍시처럼 차갑고 부드러운 애인의 손을 잡았다. 나의 사람을 온전히 믿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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