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고등어는 괜시리 해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이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이 저 멀리 보입니다. 고등어는 뻐끔뻐끔 아가미를 움직여보지만 이내 포기하였습니다.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던 몸은 어느새 뻣뻣하게 말라갔습니다. 전과 다른 불편함으로 인해 풍요롭고 따스했던 고향이 그리웠지만 다른 고등어들에게 배척되어 온 과거도 함께 떠올라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 멀리 커다란 바위가 보였습니다. 바위 윗 부분에는 따개비가 군림해 있었습니다. 고등어는 이끌리듯 다가갔습니다.
-새-액 새액
바위가 조그맣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고등어는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역시나 커다란 바위가 아닌 바다거북이었습니다.
"바다거북님!"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바다에 있어야 할 고등어 아닌가."
바다거북은 정말 바위라도 된 것 마냥 느릿하게 움직였습니다.
"어쩐 일로 이곳에......"
"그것은 고등어에게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라네. 아차, 이제 간 고등어라고 불러야하나. 껄껄."
바다거북은 웃는 것도 힘이 드는 것처럼 쿨럭쿨럭 기침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내가 이제 움직일 힘도 없다네. 잠깐 육지로 나와 잠을 자고 있는 새에 온 몸이 따개비로 뒤덮여버렸지 뭔가. 점점 숨이 조이고 구석구석 메말라가니 바다를 앞두고도 나아갈 수가 없게 되어버렸지. 껄-쿨럭쿨럭-껄."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괜찮네. 처음에는 누군가 도와주기만을 기다렸지만 그 희망이 나를 더 초조하고 옥죄이고 있었네. 모든 바다생물이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니니, 이 정도면 나름 괜찮지 않은가."
바다거북은 해탈한 말투와 달리 눈은 여전히 바다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간 고등어 자네 괜찮다면 마지막으로 나와 말동무 좀 되어주겠는가?"
고등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바다거북은 고등어에게 왜 이곳까지 오게되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고 고등어는 대답을 하다 문득 고양이 치즈가 떠올랐습니다.
"바다거북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저에게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생겨요!"
고등어는 허공에 대고 '치즈씨~'하며 애타게 고양이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노란 털을 뿜으며 고양이가 나타났습니다.
"헥헥 아저씨! 저 열심히 달려왔어요! 무슨 일이에요?"
바다거북은 고양이를 보고 눈이 커다래졌습니다. 고등어는 고양이에게 귓속말을 하였습니다. 고양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고양이는 발톱을 사악 꺼내 바다거북 온 몸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삭삭 긁어 떼어냈습니다. 따개비가 뭉텅뭉텅 떨어질 때 마다 속이 후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휴우- 다 했다. 저 잘했죠!"
고양이는 발톱을 다시 집어 넣으며 방긋 웃었습니다. 바다거북은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몸을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한 발, 한 발.
"껄껄. 이것참. 내가 간 고등어군과 고양이에게 도움을 받게 될 날이 오다니."
바다거북의 눈빛과 목소리에 생기가 더해졌습니다. 고등어는 다시 바닷가로 돌아갈 바다거북이 어쩐지 부러웠습니다.
"바다거북님, 이제 낮잠은 조금만 주무세요!"
"간 고등어군에게 목숨을 빚졌군. 그래! 포기하지 않으면 방법이 생긴다는 말,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겠네. 그리고 내가 바다로 돌아간다면 간 고등어군의 이야기를 바다 전역에 퍼뜨려주지! 껄껄."
"할아버지! 저는요?"
"그래그래. 치즈도 고맙네."
바다거북은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습니다.
"치즈씨, 고맙습니다. 덕분에 바다거북님을 구했어요."
"아이고,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드려야죠! 다음에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이제 우리 친구죠?"
"친...구?"
"네. 헤헤. 그리고 저 그동안 다른 친구들도 많이 생겼어요! 다음에 소개시켜드릴게요."
"하하. 그래요. 대신 배 부를 때 소개해주세요."
고양이는 방긋 웃으며 고등어에게 손을 흔든 뒤, 풀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같은 고등어 사이에서는 별종으로 취급받다가 다른 종의 친구가 생기는 일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아이고! 고등어 자네! 여기 있었군!"
갈매기가 사뿐히 고등어 앞으로 내려왔습니다.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