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씨 Jan 04. 2023

말의 힘

  최근 두 곳의 후원을 중단했다. 한 곳은 자연 보전 기관이고 다른 곳은 환경 보호 단체이다. 후원을 시작할 때는 간단한 문자 한 통으로 이어졌는데 중단을 하려고 보니 전화를 해야만 했다. 껄끄럽다고 생각했다. 구구절절 내 사정을 말하기도 싫었고 통화가 길어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 환경 보호 단체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예상한대로 후원을 중단하는 사유에 대해서 물었다. 돈이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뒤이어 다른 질문을 했다. 6개월 정도의 정지기간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단호하게 말했다. 중단을 하고 싶다고. 나는 이때까지도 후원 중단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마지막 말을 듣고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상담사분은 환경 보호 단체인만큼 후원자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고. 혹시 금액이 부담스럽다면 최소 후원금인 3천원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3천원을 생각하니 하루에 커피 한 잔 안 마셔도 되는 것이고 편의점 맥주 한 캔 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3천원으로 유지하게 되었다. 


  자연 보전 기관에 전화했다. 똑같은 질문을 했다.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달랐다. 6개월 정지기간이 있는데도 후원을 중단하고 싶냐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알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말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나는 전화보다 문자를 선호했다. 말을 그다지 잘하는 편도 아니고 낯가림도 심해 앞장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가끔은 내가 나조차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도 있었고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인간관계는 매우 좁다. 한 번은 동호회를 나가볼까도 생각했지만 모르는 사람과의 스몰토크라니, 생각만으로도 피곤해 관뒀다. 그만큼 나에게는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다. 


  결국에 환경 단체는 후원자를 잃지 않으면서, 나는 소액으로 부담감을 덜어 서로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지 않았나.

  애초에 아무 관심도 없었으면 후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경에 관심이 있었고 재활용 사용을 줄이고 샴푸바를 사용하는 등의 개인적으로도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호기롭게 후원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원 중단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앞섰던 것도 있었다. 껄끄러움은 그곳에서 오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상담사분 덕분에 어느 정도 체면을 차린 것처럼 불편함이 사라졌다.


  한 때 고객상담을 업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전화선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들었다. 아마 내가 나의 전화를 받았다면 네-네-하며 끊지 않았을까. 그리고 평가를 할 땐 별 다섯개를 주며 '신속, 정확하게 불편함을 해결해주었습니다.'라는 칭찬을 날리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상담과 별개로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은 느낀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서른의 축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