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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씨 Jan 15. 2023

새벽에 가오나시를 생각하다

3시 14분에 눈이 떠졌다. 새벽은 이끼들만이 축축한 숨을 뱉는 시간처럼 고요하다. 빗방울은 유리창을 때리고 사선으로 이어진 희미한 빛은 시간의 흐름을 잊기에 충분했다. 외로움이 찾아온다면 더없이 좋을 시간. 생각의 연상은 어느새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에 종착했다. 가오나시가 센의 외로움은 아닐까.


1. 센은 유일한 인간이다.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버렸고 낯선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 비가 오는 날, 센은 유일하게 가오나시를 발견하고 문을 열어준다. 


1-1.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나는 의지할 곳은 없고 주위는 낯설고 두렵다. 그 사이를 홀로 서있다. 외로움이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왔다.


2. 가오나시는 센을 원했지만 일을 하는 센은 가오나시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가오나시의 몸집은 점점 커지고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되자 센은 가오나시를 바로 보게 된다. 


2-1. 나에게서 나온 외로움은 항상 내 곁에 있지만 바쁜 현실에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다.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그럼에도 외로움은 점점 커져 나를 잡아 먹기 직전이다. 그제서야 나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우울을 동반한.


3. 센은 약을 써 가오나시를 잠재운다. 기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가오나시는 동행을 한다. 가오나시는 그곳에 남기로 결정한다.


3-1. '약'은 수단이 될 뿐이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난 여행 또는 나에게 집중하는 휴식일수도. 어쩌면 진짜 약일 수도. 잠잠해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의 마음 한 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늦여름, 옆 집 담장 너머로 커다란 잎을 자랑하는 나무에서 무화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나는 무화과를 좋아했지만 그것이 무화과 나무인 것은 몰랐다. 매끈한 곡선과 탐스러운 엉덩이를 자랑하는 무화과는 지나갈 때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무화과는 익어가며 아래로 떨어졌고 그것은 자동차 바퀴에 깔리거나 지나가는 까치가 쪼아먹었다. 바닥이 지저분해졌지만 가당치 않는듯 옆 집의 무화과는 한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겨울이 되고 세상이 하얗게 물들 때 비로소 멈추었다. 


외로움이라던가 우울함이라던가 누구든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일부분이다. 나는 한 때 무화과처럼 외로움을 남겨둔 적이 있다. 그것은 온 몸에 엉겨붙고 울음을 불러오기도 했고 여유로움에 대한 열망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은 짓밟힌 무화과처럼 지저분해졌다. 무화과에 잠식되어갔다. 그래서 겨울의 눈처럼 정신과 약을 먹었다.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 하나쯤을 알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잔잔한 호수를 울리는 것은 작은 돌멩이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에 취하지 않아야한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돌멩이가 되자는 것은 아니다. 환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빛으로 시간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사이 비는 눈으로 바뀌어 흩날리고 있다. 길게 드리운 오후의 그림자가 차가우니 이불의 따스함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오랜만에 낮잠을 자야겠다. 길고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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