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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Aug 30. 2016

또 명절증후군?친척들의 질문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소신 발언이 흔했으면 하는 백만 가지 이유 #1.


소신 발언이 만연한 사회를 꿈꿉니다.

누군가가 소신 발언을 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거나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는 사회 분위기를 꿈꿉니다.

누군가의 소신 발, 그 사람의 '싸가지'나 '네 편 내 편' 문제로 연결되지 않는 마인드의 확산을 꿈꿉니다.


그래서 소신 발언이라는 단어가 점차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뜯어 보면 의미가 겹치는 말입니다. 그냥 '발언'으로 충분한데도(발언 : 말을 꺼내어 의견을 나타냄) '소신 발언'이라는 용어를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이 이상한 현상이 부디 차차  바로잡히기를 바랍니다.





매해 특정 시기가 되면 볼 수 있는 미디어 이슈들이 있습니다. 관련 기사가 마구 쏟아지는 시점이죠. 밸런타인 데이 즈음이면 볼 수 있는 '밸런타인 데이, 대목 앞두고 만연한 상술'이라든지 연말을 앞두고 여지 없이 등장하는 '폭탄주 대신 문화를 즐기는  연말모임의 신 풍속도' 같은, 시의성에 충실한 뉴스들은 어느덧 안 보이면 허전할 정도로 뉴스의 단골 소재이자 스테디셀가 되었습니다.


이제 곧 등장할 이슈 하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름 아닌 민족의 명절 가위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절이면 흔히 등장하는 "명절 스트레스 1위, 친척들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과 같은 류의, 앙케이트를 동반한 기사들이 이제 곧 지면과 포털에 등장할 차례입니다.


명절 스트레스 1위, 잔소리...친척들의 비교에 '정신적 스트레스' (파이낸셜 뉴스, 2016.2.8)


명절 증후군이라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이 용어는 취직 결혼이라는 인생 숙제를 안고 끙끙거리는 젊은이들과 시댁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허리 펼 새 없어 끙끙거리는 며느리들에게 주로 발생합니다. 뿌리 깊은 유교 산물인 장유유서와 남존여비 사상의 콜라보가 이뤄지는 기간이 바로 명절인 때문입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옛 속담은 아마도 조선 시대에 명절을 지내고 난 여염집 며느리가 뒷마당 가축들을 쥐 잡듯 호령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장면을 누군가 보고 만들어낸 말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물질문명이 번성한 현대 대한민국 주부들은 한강 대신 백화점을 찾아가기도 하죠.

명절 스트레스 쇼핑으로 푼다...홈쇼핑 백화점 매출 '쑥'(mbc,2013.9.24)


한편 이마저 여의치 않은 청춘은, 그저 차례상에 놓인 음식을 집어먹으며 헛헛한 마음을 달랠 뿐. 애꿎은 속만 점점 더부룩해집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니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그래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설 연휴 포기하고 알바 뛰는 청년들 "고향 가서 핀잔 듣느니 생활비 벌래요"(한국경제,2016.2.9)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서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대안은 아닙니다. 심리학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중 '회피'는 전형적인 임시 방편에 해당합니다. 특정 상황, 특정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매번 그 상황과 관계에서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회피가 바로 '자살'이지요.) 살면서 맞닥뜨리는 중요한 갈등에 견줄 때 명절 스트레스는 사소한 편에 속하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피하지 않고 더 맞닥뜨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말한 쪽이 남이므로 일방적으로 상처받았다  생각하기 전에, 순간 침묵 대신 말로 스스로를  방어했더라면 상처가 훨씬 가벼웠을지 모르니까요.





그냥 소신발언을 하면 어떨까요. 담담하고도 당당하게.


"취직은 했니? 누구는 대기업 들어가서 용돈을 얼마씩 따박따박 갖다드린다더라."

공손함을 잃을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차분히 소신 말씀드리는 거죠.

"아직 준비중이에요. 저도 못지않게 부모님께 잘 해드리고 싶거든요. 그러니 아무래도 신중해지네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좋은 데 들어갈거에요."



"애인은 있니? 결혼해서 며느리 보여드리고 손주 안겨 드려야지. 그게 효도야."

"효도하겠다고 아무나 만나 서둘러 결혼할 수는 없잖아요. 조금 늦더라도 진짜 짝이 나타나면 그 때 꽉 잡으면 되지요 뭐."

"저는 애인 생겨도 결혼은 안 할지도 몰라요. 요즘 먹고 사는 일이 너무 힘들잖아요.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근데 제 주변에 이런 말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며느리 여러분,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감수하고 그냥 담담히 말씀드리면 어떨까요.

"시누이 얼굴은 보고 가야지."

"아니에요 어머니, 다음에 볼게요. 친정어르신들께 가 뵙고 싶어요. 저희 그만 가 볼게요."

말합시다.


진솔하게, 담백하게, 다만 감정적이지 않게.


혹여 내 대답에 분위기가 잠시 좀 싸해지면 어떻습니까? 집에 가서까지 스트레스로 마음 불편한 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

물론 소신껏 대답한다고 해서 질문을 받을 때 이미 얻은 내상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의 일부라도 제 때에 하면  후회의 찌꺼기는 훨씬 적게 남습니다. 더구나 '저 사람은 내 속이 뒤집어지라고 저런 말을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불필요한 오해와 상대방에 대한 적의(敵意)를 품는 일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명절마다 쏟아지는 저런 기사들의 내용이 사실 전  조금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받는 사람만 어떤 말이 기분 나빴는지 조사하지 말고, 질문한 사람도 조사해야 한다고 봐요. 왜 그런 류의 질문들을 했던 것인지. 기분이 나쁠 수 있음을 정말 몰랐는지 등을요.

이 말을 드리는 까닭은 저도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묻는 사람은 별  뜻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하물며 나쁜 뜻은 더욱 없을 것이라는. 불쑥 던지는 그런 류의 질문 그저 오랜만에  친척에 대한 친교의 표일 수 있음을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긴 어느 명절 문득 깨달았습니다.


반 년만에 만난 꼬맹이들에게 다가가

"몇 살이야?"

"몇 학년이더라?"

"(겨우 말을 시작한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렇게 대뜸 말을 걸다 문득 아이 얼굴에 스친 표정을 읽었거든요.

"뭐지? 전에도 묻더니, 기억도 못할 거면서 이런 걸 당숙모는 왜 묻는 걸까?"


아이 입장에서 과연 저런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표현을 하지 않아 그렇지 아이들도 속으로는 어른들 못지 않게 마음이 언짢을 수 있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쉽게 질문을 던진 저는, 저 나이대의 감수성과 고민 따위를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죠.

그러니 질문을 받으며 "대체 내 사정은 하나도 모르면서 왜 저런 말을 하실까!"라고 어르신께 지레  감정이 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응용편.

질문을 돌려드리세요. '나는 이 질문이 아픕니다. 당신도 아파 보시겠어요?'라고 말하고 싶다면 짖궂게 어르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멘트를 덧붙이셔도 됩니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사실 시뮬레이션 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 덧붙여 본 것이고 진심으로 이런 분은 없기를 바랍니다.


대신 질문하시는 분을 도와드리면 좋겠습니다.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관심이 없는 어르신이 있을까요. 다음 번엔 좀 더 원활히 소통하시라고 도움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알려드리세요.

"어유 요즘 그런 질문 하시면 진짜 세대 차이가 나는 거래요. 요즘엔 그렇게 묻지 마시고 '애인이 생겨도 결혼할 생각이 있니?" 이렇게 물으셔야 해요. 그만큼 저희 세대에는 독신이 많거든요."

궁지에 몰렸을 때에도 상대방에게 부드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제가 아니고, 인간 경영 및 자기계발 분야의 대가로 손꼽히는 미국의 사상가 데일 카네기가 한 말입니다.



끝으로. 이 글은 지난 설 명절에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왠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묵혀 두었던 것인데요, 반 년이 흐른 지금 문득 저장해 둔 글을 열어 보니 놀랍게도 저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더군요. 6개월 전에는 '친척들에게 이렇게 말해 보세요.' 라면서 예의를 갖추어 상대를 머쓱하게 만들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하는 멘트를 소개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지금 저의 생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유지가 나의 정신건강 유지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소신 발언을 합시다.'에 가까워졌습니다.

사람은 불변의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 처지, 내 생각은 변하는 것이니 친척들의 말을 너무 새겨듣지는 마십시오. 어차피 우리는 타인의 삶에 큰 관심을 갖기엔 스스로 너무나 바쁜 사람들. 쏟아지는 걱정거리와 사회의 이슈들을 안고 곧 명절 후의 일상으로 복귀해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신껏 하고픈 말을 드려도 어르신들이 나를 모난 돌멩이로 단정지어 두고두고 흉을 보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또 조금 그러면 어때요! 어르신들이 직장상사처럼 고과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가오는 명절, 가식을 걷어 낸 진정성 있는 세대 간 소통이 집집마다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주부들에 의한 연휴 끝 백화점 매출 상승이 예년보다 못하다는 기사를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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