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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an 08. 2016

#4. 헬조선에서 나를 보호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나에게 해 주는 스피치: 가장 나다운 나를 만드는 방법


가끔 강의를 부탁받을 때가 있습니다.

파주 출판 단지에서 진행되는 독서캠프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진로 특강을 하게 된 적이 있어요.


그 때 고심 끝에 정한 강의의 제목은 이러했습니다.


Give a speech
to your future fan!

미래의 내 팬들 앞에서 하게 될
스피치를 미리 해 볼 것!



요지는 간단합니다. 거울 앞에서, 내가 내 분야의 멘토로서 마이크를 잡았다고 상상한 채 앞의 청중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지 미리 연습해 보라는 것이죠.


왜요? 대체 '왜때문이죠?'

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들이
당신의 미래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니까요.

내 미래를 바꾼다고?

네, 바꿀 수 있다고요!!


'말에는 힘이 있다'는 류의 이야기는 자기계발 분야의 흔한 클리셰죠. 허나 그 흔한 이야기를 또 꺼낸 이유는 그만큼 효용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말'도 '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일 뿐이지만, 위의 명제는 눈에 보이는 결과로 증명된 적이 종종 있는데요, 그 중 일단 클리셰의 정석을 예로 들겠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약리학자였던 에밀 쿠에(1882~1910)는 자신이 운영하던 약국에서 약을 사는 고객들이 내용물보다는 약 표지의 선전문구와 같은 부차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연구와 실험을 거듭,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를 밝혀내고 오늘날 '쿠에이즘' 이라 불리는 사상의 창시자가 됩니다.


환자에게 질병과 관계 없는 '밀가루 알약'을 투여하며 강력한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믿게 만든 결과, 병세가 진짜로 호전되었다는 이야기! 바로 플라시보 효과(위약 효과)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를 일반화한 이론인 쿠에이즘은 다름 아닌 강력한 자기암시의 효과를 설명하는 용어인데요, 수 년 전, 우리나라 출판계를 휩쓸었던 이른바 '시크릿' 열풍, 원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가 이 바로 이 쿠에이즘을 계승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론은 당시 정말 센세이셔널한 주목을 끌었지만 그만큼 비과학적이라는 비판도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거듭된 연구로 위약 효과는 심리학, 의학, 사회학 분야의 기초용어로 점차 인정받습니다.

최근에 나온 몇몇 과학적 연구를 소개합니다.


신년 다짐, 자기계발서의 ‘자기 암시’ 효과, 정말 있나(동아사이언스, 2016.1.5)


심리학이 아닌 뇌 신경과학 분야에서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밝혀낸 플라시보 효과, 기사 마지막 부분 박두흠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전에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간주됐던 '마음'이라는 영역이 뇌 영상 촬영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는 셈.


이라고 말입니다.



방황하는 불안한 영혼이었던 이십 대에 저는 만성적 자기비하로 낮은 자존감에 시달렸습니다.

이십 대 후반으로 갈수록 연애도, 일도 잘 풀리지 않았죠. 악순환이었습니다.


괴로움에 허덕이던 시절,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제게 구원의 막대기가 되어 준 것은 뜻밖의 행운이나 거창한 성과가 아닌, 늘 긍정적이었던 여고 동창 친구의 말 한마디였어요.


너는 이미 많은 걸 가진 애야.
왜 가진 건 안 보고 그렇게 안 좋은 생각만 해? 넌 지금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멋진데!


제가 정말 운이 좋았던 건, 이 멋진 친구와 매일매일 한 집에서 대화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높은 월세의 부담을 덜고자 룸메이트를 찾고 있을 때, 마침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가 뜻이 맞은 제 친구는 그 말로서 좋은 친구를 넘어 제 평생의 은인으로 등극합니다.

함께 살았기에 저는 진심이 배인 친구의 그 말을 자주,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었어요.


어느 새 제 내면은 상처난 낡은 벽지를 스스로 떼어내고 다른 페인트 칠을 입었습니다. 좀 더 밝은 채도의, 경쾌한 색상으로요.

스스로 제가 점점 더 밝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졌어요.


맞아, 있는 그대로 날 사랑하자. 난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친구의 말은 제 마음에 강하게 뿌리내렸습니다.

신기하게도, 친구와 함께 지내던 1년 사이에 제 긴 터널은 정말로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었고(후훗), 일에 관해서도 한결 여유롭고 너그럽게 마음먹을 수 있게 됐죠.(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님을 기억해 주세요.) 범람할 듯 넘실대던 스트레스 수치는 서서히 위험수위 아래로 내려가 어느덧 안전 눈금에 도달했습니다.



이런 은인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없다 해도 괘념치 마세요. 다름아닌 내가 나의 은인이 되면 됩니다.


자, 이제 내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힘을 가진 '나 자신에게 말하기' 방법을 적극 써먹어봅시다.

제가 제안하는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이겁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목표를 이미 달성한 사람이 되었으며,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가정하고 혼자 스피치를 해 봅니다.
6하 원칙에 의거, 스피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내용이 상세해집니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가능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스피치가 익숙지 않을 여러분들을 위해 우선 1분, 3분, 5분, 10분짜리 중 하나를 선택해 구성해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이야기가 많아질 것 같다면  얼마든지 더 길어져도 좋습니다. 단, 준비 시간은 '스피치시간×5분' 정도로 정해두십시오. 길어지면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으니까요.

(동영상 촬영이나 음성 녹음을 적극 추천합니다. 추운 날씨에 얼굴이 너무 차갑거나 할 때 파일을 열어 보십시오. 금세 화끈 달아올라 더워짐을 장담합니다.ㅎㅎ)


이 방법은 다음 두 가지 모두에 효과적입니다.

추구하는 바가 분명 경우에는

목표에 도달한 자신을 가정한 채 스피치의 내용을 구상하고 말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강한 긍정의 말을 자신에게 반복해 들려주게 됩니다. 

내가 상상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정해 보십시오. 이를테면 이렇게요.


2019년. 충분한 자금을 모아, 3개월간 가족과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사내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5분간의 스피치


지금은 아기와 밤낮없이 집안에서 씨름하는 내가 2년 후, 사회에서 다시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경력단절 극복의 멘토로 나선 자리의 3분 스피치


'헬조선'의 살인적인 취업난을 뚫고  내가 원하던 일자리에 무사히 안착해 1년 후, 대학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입사성공기


(사실 공상이 풍부한 편인 저는, 여기에 '헐리웃 영화배우 되기'나 '유아인의 '여사친'되기' 같은 주제도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공상에 가까운 자기암시는 부작용 또한 적지 않으므로 여기선 1절만...이 정도로만...^^;;)




과연 3분, 5분이라는 시간은 적당할까요? 너무 길어서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제가 했던 강연에선 스스로 정했던 시간을 초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진로가 큰 고민거리인 고등학생이 대상이었으므로 발표내용도 주로 대학생이나 희망 직업을 가지게 된 자신을 상상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학생들이 진지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자기의 목표 달성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은 그들보다 앞선 세대인 저에게 더 없는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을 는지 썩 잘 모르겠다, 후보들에 대해 각각 연습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더 좋은 결정을 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사례로 예를 들었던 취업 성공기에서,

아직 원하는 일자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 각각에 대하여 해 보는 것이죠.


1. 대기업    2.프리랜서    3.창업     4.새로운 학업


카테고리는 그야말로, 내가 정하는 대롭니다.



아래는, 취업 특강 이후에 받았던 메일입니다.

전문을 담지는 않았는데요, 요지는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디로 진학할 지 고민을 겪던 친구가 연습을 통해 더 깊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배경지식과 경험을 더 쌓고자 법학대학에 가고자 결정했고 합격 소식을 전해 온, 기분좋은 일이었요. 법학 대학이 뜬금없다고요?  글쎄, 누구보다도 깊이 갈등했을 그녀의 선택을 믿어 보죠!


지금 어른이 된 여러분께서는 고등학생이었을 때, 장차 무엇으로 생계를 영위하게 될 지 혹시 알고 계셨나요?

저로 말하자면, 지금 이 일을 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당시 독실한(?) 이과생이었던 저는 나중에 국위를 선양하는 과학자가 될 거라고 믿고 공부한 과학 꿈나무였거든요.

(백 번 생각해도 안 되길 참 잘했습니다. 과학 강국 대한민국을 위해서요.ㅎ)

이공계 대학에 가고, 갈팡질팡 뒤늦은 방황기를 호되게 보내고서야 지금의 직업을 준비하게 됐던 저는, 메일의 주인공 소연이처럼 일찌감치 부단한 탐구로 나를 잘 파악하고 직업을 준비했더라면 훨씬 커리어가 빨리 성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스피치 연습은 소연이 만할 때의 시절, 과거의 저에게 지금의 제가 다가가서 가르쳐주고 싶은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여기까지, 특강 내용을 골자로 다듬어 본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하기'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주의사항이 있어요. 나다운 나를 찾고, 격려하기 위한 이 과정에서 끼어드는 현실적인 걱정들은 여기선 '이미 극복한 것으로 가정'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본문 중 아이를 키우느라 일을 쉬고 있는 엄마의 입장이 되어 봅시다.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아이를 어디에다 맡기라고? 어린이집에 등하원 도우미까지 고용한다? 비용이 감당이 될까?
당장 누리과정 보육예산(어린이집 교육비, 월 30만원 가량)은 지원이 안 될지도 모르는데
월급에서 총 비용 빼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빼면 오히려 적자가 아닐까?


당연히 따라올 생각들입니다. 허나 걱정에는 두 가지 종류 :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과 내가 바꿀 수 없는 외부 요인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꿀 수 있는 부분은 그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시뮬레이션 해서 적으시면 되고, 바꿀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시면 됩니다.

계속해서 취업 전선에 복귀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 보죠.

...... 2년 사이에 재취업해서 세일즈 분야의 매니저로 성장하기까지 어려운 점도 적지 않았죠. 두 돌 된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겨두고 등하원을 도와주는 분을 또 고용하자 아이에게 미안도 했고, 이래저래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크게 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당장 몇 년보다 먼 미래를 보고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또 무엇보다 이 모든 기회비용보다 일을 할 때 느끼는 제 존재감 성취감이 더 컸어요.......(후략)


역시 쿠에이즘에 기반한 이와 같은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 자체가 가지고 오는 부정적인 효과를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조금 거친 말로 예를 들자면,


'흙수저'인 내가 5년 만에 어떻게
내 집 마련을 하지?'

가 아니라
'5년 후 내 명의의 집을 갖게 된 나, 집안의 도움도 없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 주세요.




갓 입사한 신입사원조차 희망퇴직을 권고받는, 마치 부조리극과 같은 시대의 한 페이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자신에게 희망적인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훈련을 해 두는 것을, 저는 등산의 목적지로 가는 나만의 길을 닦아두는 일이라 표현하겠습니다. 


저마다 처한 환경도, 닿고자 하는 곳도 다르기에 정해진 등산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저 멋진 봉우리에 이미 도달한 나는, 그 때까지 애 쓴 나의 흔적을 내려다보며 미소지을 수 있겠죠. 거친 수풀을 헤집고 억센 풀을 밟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테니까요.

봉우리에 부는 상쾌한 바람을 한 번 느껴봅시다. 스피치가 끝나고 눈을 뜨면 부조리한 현실과 다시 맞닥뜨려야 할지라도, 그 느낌은 이미 경험한 것이 되어 나를 미세하게나마 바꾸어 놓습니다.

아무리 상상해 보아도 그 바람이 영 상쾌하게 와 닿지가 않는다면? 봉우리든 바닷가든 다른 곳을 고르면 되죠 뭐.

선택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당신의 몫입니다.



이만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많이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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