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을 오마주하며
전복은 어제부터 먼 길을 왔습니다.
바다 이끼 내음 짙푸른 고향을 떠나
아찔히 먼 거리를 밤 새워 달려 온
전복 여섯 마리는.
난생 처음인 게 너무 많습니다.
서울 가는 트럭의 드륵대는 모터 소리
커다란 네 바퀴 슥슥 굴러가는 소리에
어린 날의 어느 밤, 태풍이 몰아치던 밤
후려치는 파도에 여린 등껍데기 얼얼했을 때보다도
심히 전신이 어지럽습니다.
어지럼증 겨우 가실 즈음
별안간 웅크린 몸이 뒤집혀
화들짝 놀란 속살 세차게 두드리는 수돗물 세례.
알 수 없는 몽롱한 냄새와 함께
배 위로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란
평생을 나고 자란 물이건만
너무나도 낯선 느낌인 것을!
사정없이 쏟아지는 미지의 차가움에 맞서
움직여봅니다.
꿀럭꿀럭.
저 무지막지한 물줄기에 대고 시위해 봅니다.
그래 보아야 겨우 눈에 띄일 법할 뿐이지만.
미안 미안.
횡으로 잘린 채 접시에 가지런히 놓이기 위하여 너희들은 마지막 목욕을 하고 있단다.
구석구석 깨끗이 빗질을 하고 있는 나는
네가 살아 온 비린내 나는 역사를 지우고,
몸에 밴 삶의 찌꺼기를 모조리 없애기 위해
낡은 칫솔로 집요히도 네 살의 틈새를 파고든다.
그러다
문득 시인 안도현의 간장게장이 떠올랐다.
불쌍한 꽃게는 아등바등거릴,
허공에 대고 휘휘 내저을
그렇게 자기의 분노와 공포를 표현할
긴 팔과 다리라도 가졌지만
등딱지에 몸이 반이나 묶인 처지인
여섯 마리의 전복은
더 이상 어떻게 분노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저 꿈틀대거나. 한껏 숨죽일 뿐.
죽은 척은 본능, 허나 비정하고 노련한 상대는
조금의 의심도 동요도 않는다.
그렇게 마지막 목욕재계의 의식을 치르는 내게
전복이 묻는 듯하다.
이제 마지막이냐고. 곧 죽게 되느냐고.
응. 나는
산 채로 너희를 팔팔 끓는 물에 집어넣을
무시무시한 학살자란다.
좁디 좁은 이 행성의 수 많은 생명체 중
오직 인간에게만
내 의사와 감정을 조목조목 표현할 능력이 있음은
어찌나 큰 행운인지.
잡식하는 이 포식자에게,
잡혀 죽는 동물들의 언어가 통역돼 들리지 않음은
얼마나 또 다행인지.
답답함도 억울함도 딱히 호소 못하고
그의 짧은 생애를
한 인간 가족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마감한 전복을
글쓴이인 나는 애도해야 마땅하나,
어쩌나.
쫄깃쫄깃 이것 참, 이렇게나 맛있는 것을.
참기름이 도우니 우려했던 바닷내는 커녕
솔솔 코 끝엔 향기로움마저 감도는 것을.
일요일 저녁, 노량진에서 온 전복을
'깨끗이 손질하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식탁에 놓은 어느 주부의 소회.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제목이 간장게장인 게 아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