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훈이 Oct 14. 2020

나이 많은 신입사원 일기 - 뜻밖의 사건(2)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날이 밝았다.

꿈인가 싶었는데 나의 왼쪽 손가락에는 여전히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언니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감고, 사수님께 병원에 들렀다 간다는 연락을 드렸다.

월요일은 오전 회의가 있어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적기에, 큰 부담 없이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다시 찾은 대학병원 응급실.

전날 밤에 비해 환자는 많지 않았으나, 나는 여전히 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다.

10분, 30분, 한 시간.


의사 선생님께 별거 아니라는 확답만 들으면 되는 문제라 여긴 나는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래간만에 점심 먹고 들어가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안 오시지.'

빵집을 갈까, 브런치 가게를 갈까 고민하는 사이 2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

내 이름이 불렸다.


레지던트로 추정되는 선생님과 담당 간호사님.

나의 상처를 본 둘은 이 정도로 의사 선생님을 불러야 하는가에 대해 잠시 토론하더니 그래도 기다렸으니, 한 번은 보여 드리기로 합의했다. 민망해라.


오전 11시.

12시간 만에 나는 드디어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퉁명스럽게 나의 상처를 연 선생님은, 꽤 오랜 시간 들여다보셨다.

그리곤 별 거 아니라는 대답만 기다리던 내게 갑자기 질문을 던지셨다.


"엄마 어딨어요?"


지방에 계시는 엄마는 갑자기 왜 찾는가 싶어 나는 조금 퉁명스레 같이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또 물었다.

'혼자 살아요?'

왜 이렇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나한테 관심이 있나,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 언니와 산다 말끝을 흐렸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빨리 연락해요. 바로 수술해야 하니까'





??????????????????

저는 그저 칼에 스친 것뿐인데요??



넋이 나간 내게 선생님은 혹시 상처 안을 보겠냐 하셨지만, 당연히 보고 싶을 리 없었다.

알고 보니 나는 그냥 겉만 살짝 베인 게 아니라, 피부 안 쪽에 있는 인대까지 다친 거였고,

다행히 끊어지진 않았으나 인대가 덜렁거리는 상황이라 수술이 불가피했다.

게다가, 다친 지 24시간 내에 접합을 해야 하는데 나는 이미 12시간 이상을 흘려보냈으니 최대한 서둘러야하는 상황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에 잠시 정신이 혼미했지만, 동시에 신기하리만치 침착했다.

몸은 떨리는데 눈물은 또 안 나고.

지난밤 왜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나 하는 자책감과 함께 민망함, 당황스러움, 더 나아가 우습기까지 했다. 당장 회사에는 뭐라 말할 것이고 살면서 수술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내일모레가 설날인데 일주일 정도 입원하라고 하먼 어떡하지 등등 온갖 생각이 스쳤다.



담당 선생님의 배려로 당장 수술이 가능한 병원에 연락이 닿았고,

집에서 간단한 물건만 챙겨 바로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전날 치료를 못 받고 그냥 나왔다 다시 응급실로 향한 거여서 그 비싼 응급실 치료비도 두 번이나 냈지만, 지금 나에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수술을 해야 한다니.

이런 건 계획에 없던 일이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끝내고 싶어서 올려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 많은 신입사원 일기 - 뜻밖의 사건(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