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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Nov 01. 2017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남의 돈

이건 이래서 어렵고 저건 저래서 어렵지



굳이 따지자면 자영업자인 엄마 아빠.

꽁꽁 얼어붙은 경기 때문인지, 이제 정말 사업을 접고 인생 제 2막을 열 시기가 된 건지.

요즘 힘들다며, 남의 돈 받는 게 제일 좋은 거니 열심히 하랬다.


마침 재발한 위염으로 병원 갈 준비를 하던 나는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어

스트레스로 병원 가는 마당에 뭐가 좋은 거냐며 툴툴거렸다.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남의 돈 받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떡해?"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남의 돈이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남의 돈"의 대가는 노동이고, 결과물이겠지.


-


사실 요 근래 퍼포먼스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피드백을 받은 이후로,

나는 계속 결과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장난 가득 담긴 목소리로

'월급을 가져가면 성과를 내야지 / 회사는 냉정한 곳이니까 너만의 무언가가 필요해 /

월급 받으려면 해야지, 그럼 지금 그 작은 브랜드 하나로 커버되겠어요?'라고 말하지만

날아가는 말도 붙잡아다가 꼭 끌어안는 재주가 있는 나에게 그런 말들이 장난으로 느껴질 리가 없다.


뭘 해도 신경 쓰이고 뭘 해도 눈치 보이던 나날들이었다.



엄마와의 통화에서 욱했던 이유는 -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그 말이

'남의 돈 받는 값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나의 어두운 모습을 건드렸기 때문일 거다.


뭘 해도, 어딜 가도 잘할 거란 소리만 들어왔고 인턴 기간 동안 일을 잘해서 정직원 오퍼가 들어왔던 건데

지금의 나는 어리버리하기 짝이 없으니까.

나이 차이가 거의 안나는 대리님에게,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수님에게 받은 피드백이 그런 내용이었으니까.

허허 웃고 넘기긴 했지만 사실은 자존심이 너무너무 너무 상해서 뜬 눈으로 여러 밤을 지새웠으니까.

그런 말 들으면 오기가 생겨 열심히 할 법도 한데,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렇다고 마냥 예쁜 말만 해달라고 하기엔-

 내가 서 있는 곳은 "회사"이고 "사회"이니까.



-

물론 엄마는 이런 나의 상황을 모르고 한 이야기라는 걸 안다.

그냥 엄마가 조금 지쳐서, 딸에게 투정 부리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엄마의 투정을 받아주기엔 내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참 못난 딸이다.



'내 돈'이 달린 일이면 내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바꾸면 편안해질 수라도 있지.

아직 안정적이라 말할 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게 "남의 돈"은 참 무겁기만 하다.

분명 그 언젠가 내 사업을 하는 날, '남의 돈이 최고야'라고 말할 것 같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사람 참 간사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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