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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Nov 07. 2017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너의 결혼식

새상에서 제일 많이 축하해

네가 결혼을 했다.


중학교 1학년 자그마한 몸집의 우리가, 어색한 듯 인사를 나누던 장면이 눈에 선한데.

사실 그때와 지금의 몸집이 그렇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그동안 많은 일을 나누며 정신적으로 함께 커 온 너의 결혼이기에 많이 특별했다.







우리 집 셋째 딸이라 불릴 정도로 너는 내게, 우리 가족에게 각별했다.

매일 아침 학교를 함께 가고,

통학차 기사님을 졸라 차를 붙잡아두기도 하고

학교가 끝나면 우리 집 거실에 누워 낮잠도 자고,

냉장고를 털어 갈비도 구워 먹고 토하젓도 맛 보여주고.

너는 우리 집 냉장고를 통해 신문물을 많이 접한다며 참 좋아했지.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우리는 붙어 다녔다.

좋아하는 남자애의 방 창문을 올려다보며 설레어하기도 했도

무더운 여름날 다이어트한다고 운동장을 걸은 후에는

떡볶이를 사 먹으며 함께 웃기도 했지.







전적으로 내가 너를 챙기는 관계 같아 보였지만,

아니, 너는 내게 큰 버팀목이었다.

수능을 치르고 그 염원했던 서울에 입성할 때에도 너와 함께여서 더 좋았고 무섭지 않았다.

서로의 학교를 탐방하고 너의 대학 동기, 선배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어.



둘 다 술을 좋아해 만나면 꼭 맥주 한 잔, 소주 한 병을 거뜬히 비웠고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비워냈지.

내가 심하게 무너져 몸도 마음도 바닥까지 내려갔던 그 시기에도 너는 나의 옆을 지켜주었고,

둘 다 조금 길었던 취업 준비도 서로의 자소서를 공유해가며 함께 버텨나갔다.

취업도, 사랑도 뭐든 한발 늦는 거 같아 고민이었던 나를

너는 한 번도 재촉하는 것 없이 묵묵히 기다려주고 함께해 주었어.

여행. 그래 여행은 많이 못 갔던 것 같아서 그게 좀 아쉽다.




네가 구 남자 친구, 현 남편을 데려왔을 때에도 우리는 함께였고

헤어졌다며 밥 한 술 못 뜰 때에도 나는 너를 위로하러 갔었지.

먹보로 소문난 네가, 치킨을 좋아하는 네가 아무것도 못 삼키며

술잔만 조금 비워낼 때 나는 사실 조금 충격이었어.


그러다 다시 사귄다는 말을 했을 때에도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한다는 말을 했을 때에도 그리 놀라진 않았다.

그 아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너무 닮은 너희의 얼굴을 보며

너에겐 그저 순둥이 같이 다정한 그 남자애를 보며 좋은 짝이겠다 싶었었거든.





너의 결혼식.

제대로 된 연애도 하지 않았던 내게 너는 부케를 받아달라고 했지.

참나. 이마저도 너무 너다워서 거절할 수가 없더라.

너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너 시집가면 놀 사람이 없지만, 워낙 혼자 잘 노는 나이니 그깟 3년 괜찮겠지 싶더라.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의 결혼인데 그보다 더 큰 축하는 없을 것 같았어.



너의 결혼식.

아버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네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다.

우리 가족 다음으로 나를 오래 봤고 잘 아는 너,

그리고 그만큼 너를 오래 본 나이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너는 울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웃어서 하객들이 놀렸지만

그만큼 내가 울었다.

나의 청춘이 멀어진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



그렇지만 그건 순간의 감정이고 너가 행복해서 참 좋았다.

사실 또 좋았던 건,

너의 지인들 앞에 당당하게 직장인으로 설 수 있던 거.

너의 결혼식 날 마음껏 축의금을 낼 수 있었던 거.

그게 참 좋더라.

취준생이었다면 어떻게든 쥐어짜느라 스트레스받았을 그 돈을

한 번에 턱 낼 수 있는 게 참 기쁘더라.



신혼여행도 마치고 이제 정말 유부녀가 된 너.

또 한발 먼저 어른이 된 너를 진심으로 축하해.


-


그래도, 아무리 걔가 좋아도,

어차피 집안일도 걔가 하는 거 같던데.

종종 나랑도 놀고 그러자.


너는 여전히 나의 사회생활 선배이자 친구이자 버팀목이니까.

따랑해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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