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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Nov 10. 2017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자랑스러운 딸

나를 붙잡는 것






엄마 아빠의 지인들과 밥을 먹었던 날.



약 1년 만에 뵌 분들이긴 했지만,

평소 엄마 아빠를 통해 소식을 자주 접했고

워낙 살뜰하게 잘 챙겨주시는 분들이라 낯설지는 않았다.


오래간만에 모인 자리인 만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묻는 시간.

일 년 전 백수였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께서는

자연스레 나의 근황을 물으셨다.


"작은 딸은 어디서 일해?"

"서울이요."

"서울인 건 알지."

"아.. 외국계 회사입니다."



남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한 단어로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나의 신분. 직장인.


살짝 상기된 엄마의 얼굴을 보니

전환을 앞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을 때 아빠가 나를 설득하려 했던 말을 기억한다.

'요즘 엄마가 지친 것 같으니까. 기쁜 일 하나 만들어주자.'

나의 입사를 자랑스러워하던 엄마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ooo딸 장하네. 고생했어'



그동안 엄마는 이런 순간을 기다려온 게 아니었을까.

떳떳하게, 조금은 자랑스럽게 딸을 소개할 수 있는 단어를 말할 수 있는 날.

힘들게 일해 대학을 보내고, 어학연수를 보냈던 딸을 통해 지난 엄마의 고생을 보상받는 날.

취업 준비 기간이 유독 길었던 나를 기다리며 같이 마음고생했던 시간을 씻어내는 날.





아마 당분간은 퇴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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