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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Nov 30. 2017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좋고 싫음

그래도 사람인지라




사실은,

지금 일하는 곳에 몸 담기 직전까지도
마케팅 대행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케팅할 거야'를 입버릇처럼 이야기해 온 나날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인하우스만을 생각했었지 에이전시를 꿈꿨던 적은 없었다.
딱히 에이전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었으나,

말 그대로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의 대행사가 하나의 고객사를 맡거나,

한 명의 담당자가 하나의 클라이언트만 맡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입사 후 깨달았다.
나는 정말 무지하다 못해 무식이 통통 튀는 애였다.








처음 인턴으로 입사하자마자 나는 동시에 세 개의 고객사에 대해 배웠다.
간혹 네 곳이 되기도 했었고,

옆 팀 업무 지원이 잦아지며 꽤나 많은 브랜드에 발을 걸쳐 보았다.


일 년이 다가오는 지금은 두 개 브랜드에 70% 정도 에너지를 쏟고
윗분들 담당 브랜드 일을 서포트하는데 20%를 쓰는 듯하다.

나머지 10%는 업무 외 업무 정도^^...


여하튼 클라이언트의 규모에 따라 한 팀이 한 고객사만을 전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를 비롯한 우리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 한 번에 여러 클라이언트를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 간 성향이 비교되고, 자연스레 호불호가 생겨난다.  




나, 우리 팀, 저 건너 다른 팀까지 -

관련된 모든 이들을 힘들게 하지만 금액이 커 '해야 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금액은 적은데 요구사항이 많아 사람 피를 말리는,

위에서도 언제 끊어 낼지 고민하는 곳도 있다.
건너편 담당자님 매너가 좋아서 하나 줄 것도 두 개 주게 된다는 광고주도 있고,
브랜드, 업무 모두 마음에 쏙 들어 주말까지 할애해 가며 더 잘 해주고 싶다는 곳도 있다.




물론 일을 하는 데에 있어 개인의 선호도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 같다.
계약이 끝나기 전까진 맡은 책무를 다해야 하는 '담당자'이기에,
광고주에게 메일을 쓰고 리포트를 전달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제안을 위해 뒤에서 부단히 자료를 찾으며 업체에 전화를 거는 일은 매일같이 계속된다.




작지만 내가 처리하는 브랜드가 생기고
기존 브랜드에서도 맡은 역할이 확장되면서,
나는 왜 사회 선배들이

'회사 생활을 하며 좋아하는 일, 관심 있는 분야의 일만 할 수는 없다'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일'임에도 좋아하는 감정이 하~나도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자꾸 빙빙 돌려 말하지만,

그렇다.

나는 지금 내가 맡은 브랜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높은 자의식을 바탕으로 프리미엄을 주장하며 과한 기준을 요구하는 A브랜드와

모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지만 아직 살아있는 B브랜드.
나조차 아직 납득하지 못한 그들의 매력을 고민하고
돈을 받는다는 이유로 모든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일상이 조금 답답하다.



사람이라도 좋으면 또 모른다.


내가 실수하면 공개적으로 메일을 쓰고 본인이 실수하면 은근슬쩍 전화를 거는
'갑' 의식 투철한 A브랜드 담당자님도,
오후 5시 30분에 전화해서는 10분 안에 계산서 발행해달라는

B브랜드 담당자님도 잘 안 맞는 거 같다.

그분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정서와 맞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다.(고 믿고 싶다.)




우씽.
요즘은 어떻게 하면 맡은 브랜드에 애정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일의 경중을 떠나 무엇이든 '의미'를 중요시하는 나이기에,

책임감만으로 움직이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이 월급날이라는 거다.

3일 치 원동력이 들어오는 매 월 마지막 날.

갑자기 힘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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