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훈이 Nov 27. 2017

나이 많은 신입사원 일기 - 외출

그냥 그런 날도 있다


잠깐의 외출을 했다.

예전엔 매달 진행하는 행사가 있어 한 달에 한 번은 꼭 사무실을 비웠었는데
클라이언트가 바뀌면서 나는 사무실 붙박이가 되었기에,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선물용 상품권을 사러 나가는 거여서 어찌 보면 심부름이나 다름없었다.

윗분께서는 인턴 친구를 보내라 하셨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내가 가고 싶었다.

점심도 걸러가며 종일 앉아있던 터라 바깥공기가 쐬고 싶었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그녀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서 내가 가야만 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신이 나던지.

내적 댄스를 애써 감추며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혼자 외출하는 건 처음이라 더 좋았다.





오후 5시가 채 안된 시간.
강남답게 길이 막혀 택시는 기어갔고, 멀미가 났다.

원래 멀미를 잘하는데 빈속이라 더 심했다.

위염이 다시 도지는 것 같았고 이대로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사실 쓰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백화점 앞에 내려 숨을 들이마시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코가 시린 찬 바람마저 반가웠다.





꼭대기 층에 있는 서비스 라운지를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물론 엘리베이터지만,

일부러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길.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가 받았다.

월요일부터 어리광을 부리는 내게 아빠는 진지하게 빵을 끊으라고 했다.

아니- 아빠 그게 아니야. 빵은 죄가 없어.

빵 대신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상품권이 내 가방에 들어오기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기계적이지만 너무나도 친절한 직원 분의 인사를 받으며 라운지를 나서던 길.

바로 가기 아쉬워 괜히 화장실에 가 거울도 한번 보고,

요즘은 뭐가 예쁜가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다.

그 와중에도 점심시간 내내 찾았던 크리스마스 소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왠지 모르겠지만 신경질이 난다.



그저 종이 몇 장일뿐인데, 금액 때문일까.

가방이 참 무겁게 느껴졌다.

5분만 쉬었다 가자 싶어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소파가 너무 포근해서 졸리다.

눈이 건조해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난다.

딱 일주일만 핸드폰 끄고 엄마 옆에 있고 싶다.
이제 들어가야겠다.




들어가면 또 뭘 해야 하더라......

종종 이렇게 나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위로받으려 쓰는 것도 아니고, 우울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날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 많은 신입사원 일기 - 브런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