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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Dec 06. 2017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퇴근 후 맥주

한 잔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

늘 그러하듯 일찍 퇴근하고 싶은 날이었다.
하지만 비용 처리할 게 남아 석식을 먹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업무 외 업무 중 하나인 비용 처리.
연말이기도 하고 내가 일한 것에 대한 돈을 받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하지만,
하나하나 신경 쓸 게 많고 윗분께 직통으로 연결되는 거여서 가장 민감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저녁 먹기 직전 또 실수를 하나 저질렀던 터라 예민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저녁을 먹고도 어쩐지 속이 허해 아껴둔 쿠키를 먹으며 비용처리를 시작했다.

아주아주 고칼로리의 미국식 쿠키였지만 먹고 있다는 느낌도 없이 우물거리며 영수증을 붙이던 도중,

어쩌다 보니 요즘 회사에서 가장 핫한 보드게임 판에 끼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지 못한 야근이 시작된 것이다.


홀린 듯 게임을 끝내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으니 여덟 시 삼십 분.
30분간 초집중해 일을 마치고 컴퓨터를 끄려는 순간 메신저가 다시 깜박였다.
발신자는 옆 팀의 친한 대리님.
'언제가? 맥주 한 잔 할래?'





화요일.

한 주의 시작에 가까운 날이었지만 나는 당연히 좋아요를 외쳤다.
사케나 소주보단 맥주가 잘 어울리는 오늘은 화요일.




날이 너무 추워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이자카야에 발을 내디뎠다.

바글바글 -
평일임에도 붐비는 술집을 보니 야근은 우리만 하나 싶다.







오랜만에 갖는 자리여서일까, 피로가 쌓였던 걸까,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우리는 맥주 반 잔을 거뜬히 비워냈다.
그리고 아껴둔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같이 나간 행사 이야기, 요즘 일상, 서로 맡은 일에 대한 고충.

속마음을 100% 드러낸 건 아니지만 그게 그렇게 후련하고 시원했다.


사수님이 편하고 동기와 친해도 성별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개개인이 가진 공감 능력치의 차이인지
그들에겐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털어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우리는 맛있게 술을 비워냈다.
정말 딱 한 잔만 마시기로 했었지만, 한 잔을 더 시켜 반씩 나눠 마시기로 타협했다.

안주가 남았고 이야기가 남았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참 멋진 핑계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서로 팀이 다르고 클라이언트가 달라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때론 애매하게 아는 이에게 털어놓는 것이 더 후련할 때도 있는 법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신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고
많은 양을 먹은 게 아니었음에도
충분히 배가 불렀던 날이었다.
오늘은 왠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비록 새벽에 또 깨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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