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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Mar 09. 2018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지나간 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매년 이 시즌이 되면, 나의 SNS 피드가 화려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딸기가 등장하고, 디저트 가게들이 딸기 디저트를 만들어 내는 그 시점부터

눈에 띄게 밝아지는 것 같다.





모든 과일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는 딸기.

물기 가득 머금어 촉촉하게 빛나는 자태는 바라보기만 해도 예쁘고,

특유의 달콤한 향과 맛은 어느 디저트와도 잘 어우러진다.




그래서 많은 빵집들이 딸기 철이 되면 시즌 메뉴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디저트 매니아인 나도 주말마다 '어딜 가야 하나' 싶어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다.







이런저런 일로 유난히 빠르게 흘러가는 2018년도.

딸기가 나왔다는 소식에 신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즌을 종료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좋아하는 베이킹 클래스에서는 마지막 딸기 디저트 수업을 열었고,

좋아하는 빵집에서는 딸기 대신 한라봉이 등장하는 등

가장 맛있는 순간만을 전하겠다는 사장님들의 굳건한 의지가 곳곳에서 보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몸이 피곤해서, 일이 늦게 끝나서, 약속이 있어서 등 갖가지 이유로 미뤄왔던 날들이 떠올랐다.

하루하루 채우기도 바빠서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제대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벌써 나의 사랑 딸기가 들어갈 채비를 하고, 곧 있으면 전국이 꽃밭으로 변할 거란다.     






생각난 김에 그간의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다.


어느 가을날 집 앞 공원을 거닐다 다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  

‘올해는 단풍 본 기억이 없네.’  

작년 9월부터 시간이 광속으로 흘렀기에 뭔가 보러 갈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2017년 4/4분기는 그야말로 나의 삶에서 통편집됐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니 여름엔 바다 한 번 못 봤던 것 같다.

물에는 발도 못 담가 봤고, 락페스티벌만 급하게 다녀왔던 것이 유일한 피서였다.    


그럼 봄은 어땠었나.   

집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드라이브를 하고 나 홀로 꽃구경을 가긴 했었다.  

지기 직전이라 파란 잎이 절반이었지만, 보긴 봤었네.








모든 계절에 열리는 모든 이벤트에, 모두가 참여할 순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건가 궁금해졌다.  

나는 살고 있는 걸까, 살아내고 있는 걸까.




     

지난 주말 가만히 나의 브런치를 보다 첫 글을 읽게 되었다.  

나는 사회에서 기대하는 속도에 비해 느리지만

그만큼 자세히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살필 줄 아는 사람이어서,

그것들을 기록하고 나누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한다 적혀 있었다.      




 

조심스레 첫 글을 발행했던 날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한데 -

벚꽃도 바다도 단풍도 심지어 첫눈도, 계절의 변화 한 번 느껴보지도 못한 채 그냥 흘려보냈었구나.   

지난 1년 간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에게 어쩐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쉽긴 하지만 통장에 따박따박 입금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

세상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확인한 날들이었다며 위안을 삼아봐야 겠다.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봄이 온다.   




잠들었던 것들이 다시금 눈을 뜨는, 무엇이든 시작하기 좋은 계절, 봄.  

올해는 좀 더 보고 느끼고 남기고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자, 그럼 까먹기 전에 딸기 케이크부터 먹어 볼까나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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