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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Dec 24. 2017

나이 많은 신입사원 일기 - 나 홀로 집에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종교가 없음에도 괜스레 설레고

괜스레 마음 한편이 간질간질해지는 날.



영화에서처럼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선물이 놓인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크리스마스를 남자친구와 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연말 분위기가 더해져서인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괜히 먹을 사람도 없는 홀케이크를 예약하곤 했다.



정말 특별할 건 없었다.

지난 몇 년 간 낮에는 이력서를 쓰고

저녁에는 언니와 홈파티를 열어

술과 케이크를 실컷 먹는, 어찌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이벤트가 그리 많지 않은 이 세상에서

마음껏 즐거워하고 축하할 만한 핑계가 되어주는 것 같아 좋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직장인이 된 후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다.

취업을 하고 나면 나의 삶도 달라지고,

크리스마스도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변한 건 없다.




여전히 남자친구는 없고,

여전히 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집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했고,

여전히 단골 빵집의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함께,

각종 술을 마시며 12월 24일을 보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늘 함께했던 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겨 혼자가 되었다는 거 정도?







외로울 줄 알았다.

적적할 것 같았고 스스로가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 줄 알았다.







그런데 - 너무 좋다.








백화점에서 산 샐러드에 좋아하는 빵을 한 조각 굽고,

어디선가 받은 와인병을 따 양껏 마시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그러다 술이 모자라 작년에 먹다 남은 보드카에 남은 주스를 섞어 즉석 칵테일을 만들고

선물 받은 디저트로 입가심을 하는 그런 크리스마스.




엄마는 이 좋은 나이에, (엄마 눈에) 이렇게 예쁜 딸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몹시도 마음 아파하셨지만,

지난 12월 내내 '혼자 있고 싶다', '고립되고 싶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나이기에,

실로 오래간만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 자신에게 마음껏 해줄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이번 하반기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음에도

맘껏 생각할 수 없어 속상한 날들이었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몇 달만에 찾아온 이 순간이 감사해 쉽게 잠 못 들 것 같다.






앞으로도 어떤 시간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

몇 잔의 술을 더 마시게 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2017년을 마무리하게 될지도,

누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주말을 기점으로 생각이 정리됐고 마음이 나아진 만큼

나는 조금 더 '지금'에 충실하기로 했다.

내일이 지나고 화요일 출근이 가까워지면 또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지금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길었는데 - 결론은 이거다.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나의 일상을 지켜봐 주시고

함께해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셔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좋은 날이라는 핑계를 빌려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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