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종교가 없음에도 괜스레 설레고
괜스레 마음 한편이 간질간질해지는 날.
영화에서처럼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선물이 놓인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크리스마스를 남자친구와 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연말 분위기가 더해져서인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괜히 먹을 사람도 없는 홀케이크를 예약하곤 했다.
정말 특별할 건 없었다.
지난 몇 년 간 낮에는 이력서를 쓰고
저녁에는 언니와 홈파티를 열어
술과 케이크를 실컷 먹는, 어찌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이벤트가 그리 많지 않은 이 세상에서
마음껏 즐거워하고 축하할 만한 핑계가 되어주는 것 같아 좋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직장인이 된 후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다.
취업을 하고 나면 나의 삶도 달라지고,
크리스마스도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변한 건 없다.
여전히 남자친구는 없고,
여전히 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집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했고,
여전히 단골 빵집의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함께,
각종 술을 마시며 12월 24일을 보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늘 함께했던 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겨 혼자가 되었다는 거 정도?
외로울 줄 알았다.
적적할 것 같았고 스스로가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 줄 알았다.
그런데 - 너무 좋다.
백화점에서 산 샐러드에 좋아하는 빵을 한 조각 굽고,
어디선가 받은 와인병을 따 양껏 마시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그러다 술이 모자라 작년에 먹다 남은 보드카에 남은 주스를 섞어 즉석 칵테일을 만들고
선물 받은 디저트로 입가심을 하는 그런 크리스마스.
엄마는 이 좋은 나이에, (엄마 눈에) 이렇게 예쁜 딸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몹시도 마음 아파하셨지만,
지난 12월 내내 '혼자 있고 싶다', '고립되고 싶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나이기에,
실로 오래간만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 자신에게 마음껏 해줄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이번 하반기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음에도
맘껏 생각할 수 없어 속상한 날들이었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몇 달만에 찾아온 이 순간이 감사해 쉽게 잠 못 들 것 같다.
앞으로도 어떤 시간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
몇 잔의 술을 더 마시게 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2017년을 마무리하게 될지도,
누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주말을 기점으로 생각이 정리됐고 마음이 나아진 만큼
나는 조금 더 '지금'에 충실하기로 했다.
내일이 지나고 화요일 출근이 가까워지면 또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지금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길었는데 - 결론은 이거다.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나의 일상을 지켜봐 주시고
함께해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셔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좋은 날이라는 핑계를 빌려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