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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Mar 25. 2022

휘뚜루마뚜루, 떠먹는 고구마 피자

출근의 이유

나 오늘 4교시 없어.

나도!

나는 있어...


단톡방에 올라온 네 글자에 순식간에 이 세상 모든 침울함이 우리에게로 왔다. 교사에게 4교시 수업이 있느냐 없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점심시간이 결정되니까. 함께 먹는 식사 멤버가 있다면 그들의 수업 시간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은 나의 점심 멤버 중 한 사람이 4교시가 있었다. 점심을 먹는다는 즐거움에 설레던 마음은 금방 실망감으로 까맣게 타버렸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딱 1시간만 더 기다리자.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은 막상 일을 시작하니 금세 흘렀다. 수업 종료 종이 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차! 그런데 오늘 메뉴는 전자레인지의 힘이 필요했다. 결국 데우는 시간 때문에 점심 식사가 조금 늦어버렸다. 성질 급한 점심 멤버들이 재촉하는 눈빛이 따가웠다. 오늘은 나의 신메뉴를 공개하는 아주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우유, 시리얼을 가져온 Y와 W가 꺼낸 풀떼기. 너무도 볼품없는 메뉴 앞에 나의 떠먹는 고구마 피자는 아름답게 빛났다. 사실 집에 굴러다니던 재료를 가지고 대충 만든 거라 맛이 있을지 좀 긴장이 되었다.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뱉어내지 않을 정도면 괜찮지만 누군가에게 내놓을 식사는 그 이상의 맛이 필요하니까. 약간의 걱정을 누르기 위해 시크한 척 대강 만든 거라고 선수 치려 했건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대박.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나도 해볼래.”

“어차피 안 만들 거 묻지 마.”

“아냐 아냐. 나 이번엔 진짜 만들어 볼 거야.”


미리 삶아 놓은 고구마를 으깨서 그릇 전체에 두툼하게 깔고, 주말에 만들어 두었던 토마토소스를 깔았다. 토마토소스는 백 퍼센트 나의 취향을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양파, 마늘, 토마토, 베트남 고추에 소금 약간으로만 간을 한 아주 단순한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양파의 단맛, 토마토의 시큼함, 고추의 매운맛이 어우러진 복잡하고 오묘한 하모니를 자랑했다. 그 위에 치즈를 푸짐하게 얹었다. 마지막으로 집에 있던 베이컨과 옥수수, 양파를 볶아 토핑으로 올렸다.


나도 한 입 떠먹었다. 토마토소스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재료로 열일하고 있었다. 고구마의 달달함과 소스의 매콤함, 그리고 톡톡 씹히는 옥수수와 베이컨까지. 수고에 비해 효과가 매우 훌륭했다. 우리 모두 말없이 빠르게 수저를 움직였다. 중간중간 진짜 요리를 할 거네 마네 먹으면서도 티격태격했던 우리와 달리 묵묵히 본인의 몫에만 최선을 다했던 W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 먹었으니까 퇴근하자!”


그랬다. 그날 우리가 출근한 이유는 바로 새로운 메뉴, 떠먹는 고구마 피자 때문이었다. 다 먹었으니 퇴근하자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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