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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실패

스프링 걸의 자랑거리

by 정담아

나의 자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났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명언이라 내민 이 말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실패가 무슨 자랑이야? 내 자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될 거야, 라고. 참으로 당돌하고 무모했던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넘어질 만한 길은 아예 들어서지 않았고, 균형을 잡을 자신이 없을 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멈춰 섰다. 초등학교 시절 그 흔한 고무줄놀이를 한번 해본 적이 없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미 동네 골목에서 고무줄을 마스터하고 온 아이들이 알고 있는 모든 규칙과 기술을 나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고무줄은 공기, 땅따먹기와 달리 홀로 연습을 할 수 없는 종목이었다. 고무줄을 배우려면 친구들 앞에서 허둥대는 모습과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표정, 씩씩거리는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들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깔끔하게 나는 고무줄놀이를 포기했다.


중·고등학교에서 실패를 피하는 건 더 쉬웠다. 학교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그저 국영수, 가끔 음미체를 하면 그만이었다.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 없었기에 넘어질 일도 없었다. 문제는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지면서 시작되었다. 밖은 너무도 낯설고 고단했다.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걸어도 헤매기 일쑤였다.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직진하던 과거와 달리 목적지가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가야할 길을 몰라 발걸음이 꼬였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넘어지는 법을 모르던 내게 엉덩이가 땅에 닿는 건 곧 끝을 의미했다. 비틀거렸지만 계속 걸었다. 자꾸 엉키던 걸음에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벌러덩- 미끄러지고 말았다.


넘어진 내가 너무 수치스러웠다. 누가 볼까 두려웠다. 벌떡 일어났다. 바닥에 찢겨 너덜대는 옷가지를 추스르며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얼어붙은 입꼬리를 애써 올렸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잽싸게 달렸다. 내게 기대를 걸고 있는 이라면 실망을 할까 두려웠고, 나를 시기하는 이라면 고소해할까 무서웠다. 잔뜩 엉킨 머릿속을 부여잡고 허겁지겁 달리다 또 넘어졌다. 철철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엉엉 울고 싶었지만 울음소리가 퍼져나갈까 입술을 깨물었다. 혀끝에서 비릿한 붉은 맛이 났다.


한번 중심을 잃은 몸은 자꾸만 꼬꾸라졌다. 온갖 자격증 시험부터 임용, 대학원 입학, 중·고등학교와 대학 교직원, 공기업, 사기업까지. 미끄러지는 게 일이 되다보니 일어나봤자 또 넘어질걸 힘들어 일어설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나자빠진 그대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귀신, 미신, 다 나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대체 어떻게 하면 날 가만히 놔둘래? 내 앞에 놓인 돌부리나 웅덩이, 낭떠러지들, 언제쯤 치울래? 어?"


그러다 지치면 희망 한 포기 나지 않은 찬 바닥 위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두 뺨 위를 흐르는 눈물마저 꽁꽁 얼어붙을 때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망한 인생, 더 넘어지면 어때? 다시 걷고 뛸 수 있다는 희망은 없었지만 다시 넘어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벌떡- 일어났다.


무작정 걸었다. 여전히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헤매는 것도, 그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겁나지 않았다. 움직이는 자리마다 내 발자국이 찍힐테니까. 땅에 새겨진 자국만큼 내 몸에도 시간의 지문이 새겨졌다. 넘어진 상처와 아문 흉터들이 쌓여갔다. 찢기고 긁혀 따끔거리기도 했고, 아물기 전에 덧난 상처에서 진물이 나기도 했다.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늘어나서 깁스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말캉한 살갗에 굳은살이 뱄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발도 컸지만 툭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혼자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자주 넘어지지만 대신 잘하는 게 생겼다. 몸에 붙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벌떡 일어나, 다시 뚜벅뚜벅 걷기. 넘어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내 상처를 보여주기. 그럴 때마다 내 상처가 자랑스럽다. 왜 넘어졌느냐고 비웃거나 다그치기보다는 여기 당신과 같은 부위에 비슷한 상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좋다.


이제 안다. 돌부리가 없더라도 그냥 툭- 넘어질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나는 또 벌떡-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될 일이란 걸. 매서운 추위 끝에 다시 시작되는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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