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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시간이 건넨 까만 씨앗

나의 흑역사

by 정담아

2022년은 바쁜 한 해였다. 글을 쓰겠다며 직장을 박차고 나온 뒤 어떻게든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제일 먼저 시도한 건 북마켓 참여였다. 직접 책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홍보의 목적도 컸다. ‘정담아’라는 사람을 독자에게든, 책방에게든 알려야 했다. 몇 차례 참가했을 때 마침내 그 효과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라기보다는 마켓 옆자리에 앉았던 작가님들과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그중 한 분은 독립출판계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스토리지북 앤 필름과 연이 있는 작가였는데, 두 번째 만난 마켓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작가님은 워크숍 진행 같은 건 안 하세요?”

“네? 그런 건 유명한 작가들이나 하는 거 아니에요? 전 인지도가 너무 없어서...”


분명 겸손의 의미는 아니었다. 내겐 겸손을 장착할 만큼의 명성이 없었으니까. 주체 없이 수줍어하는 내게 그는 ‘혹시 생각해 둔 기획이 있냐’ 되물었고, 그 순간 내 마음의 소리가 외쳤다.

‘어쩌면 이게 기회가 될지 몰라! 뭐든 던져!’

번뜩 정신이 들었을 땐, 막연히 품고 있던 아이디어를 마구잡이로 풀어놓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여차저차 워트숍을 열게 되었다.


단 한 줄로 짧게 요약되는 그 시간은 그리 쉽지 않았다. 기획은 쉬었으나 그게 가장 쉬웠다. 특히나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내게 담당자와의 소통은 너무도 어려웠다. 고작 같이 날짜를 정하고 문구와 이미지를 작성해 넘기는 그 모든 시간이 힘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쓰는 메일은 이유 없는 부끄러움을 유발했다.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심지어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른거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키보드 자판을 연신 눌렀다 지웠다 했다. 모든 것이 결정된 이후에도 좀처럼 시간은 매끄러워지지 않았다. 인스타 피드에 올라온 워크숍 공고를 마주하는 게 부끄러웠고, 다른 모임 공지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반응에 신경이 쓰였다. 아, 괜히 깜냥도 안 되는 주제에 덜컥하겠다고 나선 건 아닐까, 가격을 더 내렸어야 했나, 날짜가 너무 여름휴가랑 겹치나. 질척대는 후회와 끈적대는 초조가 들러붙은 수줍은 순간을 지나, 나는 모객에 성공했다. 간신히.


생의 첫 워크숍이 예정된 곳은 8월의 해방촌이었다. 이글대는 태양 볕과 그 빛이 잔뜩 달군 땅의 열기까지 위아래로 받아 내며, 높은 경사를 자랑하는 골목길을 올랐다. 워크숍에 필요한 우체통까지 짊어지고. 분명 천천히 걷고 있는데 등줄기로 땀이 스르르 흘렀다. 담당자로부터 한 명이 불참이라는 연락을 받은 건 그쯤이었다. 아, 2명의 신청자 중에 한 명이 안 오면 일대일. 꽤나 민망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단출하니 다정한 구석이 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찝찝한 초조함 사이를 바삐 걸어 장소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 안내받은 대로 불을 켜고 에어컨을 돌렸다. 건조한 서늘함을 꺼렸지만 함께할 이를 위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어느 자리에 앉아야 가장 편할지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세팅을 했다. 여러 번 수정한 뒤에야 드디어 자리를 잡고 기다렸지만 약속된 시간이 되어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10분, 20분... 혼자만의 고요를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안내받은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급작스러운 야근 때문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부랴부랴 짐을 싼 뒤 불 꺼진 어둠 속을 급히 빠져나왔다.


바깥공기는 축축했다. 한여름의 해는 길어 여전히 하늘에 푸르고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이 식어 기울어가는 모습이 애잔했다. 그 옅은 태양 속으로 걸을수록 벌겋고 노란 빛깔이 등줄기로 떨어지면서 다시 젖어 들어가는 옷이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그다음 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텅 빈 장소에서 나 홀로 멍하니 기다리다 ‘야근 때문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가장 민망한 건 ‘잘 마쳤냐’고 묻는 다정한 담당자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문자에 거짓으로 답할까 잠시 고민했다. 이번에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하면 그 역시 제 몫이 아닌 미안함을 끌어안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사실을 고했고, 우린 괜한 미안함을 나누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은 아예 신청자가 한 명도 없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 워크숍의 존재는 이 세상에 나와, 그걸 내걸었던 책방 주인 정도만 아는 상황이랄까. 누가 워크숍을 진행하자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났다. 어차피 신청자가 없을 그걸 위해 들이는 품도 아까웠다. 그게 다 홍보고 경력이라는 말에도 전혀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책을 팔아선 생계가 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조연 하나 얻을 그날을 위해 엑스트라 역 100개를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단역 배우였다.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만큼 힘에 겨워 그런지 민망하거나 분한 순간을 날려버리기 위해 이불킥을 던지는 시간도 사라졌다. 대신 내 손에 쥐어진 까만 시간들을 이불속으로 끌어안았다.


눈앞이 깜깜하고 새까맣게 지우고픈 순간 대신, 내 붉은 열정과 푸른 꿈, 노란 땀방울과 분홍 설렘을 모두 담아 결국 검은색으로 변한 흑점들. 그 까만 조각들을 줍는다. 2022년 내내 동분서주하며 갈아냈던 꽁꽁 얼어붙은 땅 위에 손에 쥔 그 까만 씨앗들을 넣어본다. 그 안에 품은 수많은 빛깔들이 언젠가는 푸른 싹을 틔우고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꽃피우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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