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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펼치다

새로운 취미생활, 타로 카드

by 정담아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기억 너머로 사라진 그 노래가 다시 소환된 건 잔잔했던 일상에 생긴 균열 때문이었다. 닿지 않는 대상을 향한 간절함, 그게 문제였다. 결코 틈을 내주지 않는 그 차가운 뒷모습을 향한 뜨거운 열망. 그 확연한 온도 차를 견디느라 애가 탔다. 절박함에 몸이 닳고, 애틋함에 마음이 저릿하더니 결국 빠직- 갈라지고야 말았다.


균열은 글을 본격적으로 쓰겠다는 당치도 않은 당찬 포부에서 시작되었다. 일상의 탈출구가 되어주던 글이 업이 되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졌다. 모든 순간이 아이템이 되었고, 그걸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나에게 분노했으며, 자꾸만 지쳐가는 내가 못마땅했다. 쉬겠다고 책을 보면 ‘난 왜 이렇게 못 쓰지?’ 싶었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래, 저런 사람들이 글을 써야지. 난 직장이나 알아봐야 하나 봐.’로 귀결되는 심술보를 터뜨리며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럴 때마다 글을 향한 맑고 투명했던 마음에 잿빛이 한 두 방울씩 떨어졌다. 분노와 절망, 증오와 좌절, 체념과 후회...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엔 도무지 구겨 넣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도 미묘한 마음이 뒤섞여 점점 검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그 까만 마음은 내 일상의 균열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무겁고 어두운 기운을 피해 달아날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타로였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명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느 순간 내 손에 타로 기본서와 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메이저 카드 22장, 마이너 카드 14장씩 4세트, 총 78장으로 구성되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느꼈다. 새로운 세계가 건넨 희열과 설렘이 일상의 균열을 메울 만큼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음을. 하지만 그 간질대는 기대는 첫 장인 0번 바보카드에서 끝나버렸다. 바보같이. 각 카드의 핵심 키워드를 진득하게 공부할 인내가 내겐 없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은 내게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저 술렁술렁 희미하게 쌓은 개념을 가지고 무턱대고 문제풀이로 바로 넘어가는 걸 좋아했다. 새로운 걸 꼭꼭 씹으며 하나씩 체득하는 것보다는 대강 알고 있는 것들을 꺼내 내 멋대로 조리하고 펼쳐내며 배워가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였다.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타로 리딩 스터디를 덜컥 신청해 버린 건.


이것저것 찾아가며 모임장이 올려준 카드를 나름대로 해석해 나가면서 새로운 걸 하나 알게 될 때마다 둘이 궁금했다. ‘에이스’가 시작을 의미하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검, 동전, 물, 지팡이 각각과 함께 그려져 총 4가지 경우가 어떻게 다른 ‘시작’을 가리키는지 알고 싶었다. 말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모임장의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읽을 때도 물음표가 찍혔다. 상사와 의사소통 때문에 고민인 내담자의 타로 결과를 해석하면서 상사의 성격까지 언급하는 게 신기했다. 대체 카드의 어떤 부분에서 그걸 유추하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주어진 질문에만 성실히 답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 부끄럽게 손을 들며 질문을 던지는 나는 어느새 열혈 학생이 되어 있었다.


타로는 내게 뒷모습만 보이는 글과는 달랐다. 얼굴을 보이고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매일 키보드 대신 타로 카드를 만졌다. 타로와 친해지는 걸 넘어 빨리 타로 마스터가 되고 싶었다. 실전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에 친구들의 고민을 안고 카드를 펼치기도 했지만 아직 미숙한 해답을 내놔야 하는 탓에 결국 뽑아 든 건 내 질문이었다. 고민도, 문제도 없을 만큼 단순한 삶이라 생각했건만 문제를 만들기 위해 뱉어내고 나니 제법 질문이 쌓였다.


프리랜서로 자립할 수 있을까?

작가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계속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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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질문을 뽑아 들 때마다 내 안에 피어난 열꽃을 마주했다. 주체할 수 없는 열기에 퍼진 그 까끌거리는 불안을 외면하느라 괜스레 곁을 내어주지 않는 글의 뒤통수로 시선을 돌렸던 건 아닐까. 마음에 품은 열망만 쫒느라 정작 그걸 품은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뒤늦게 품 안에 퍼지고 번진 수많은 자국들을, 그 사이 틈을 힘껏 틀어막고 서 있던 나를, 마주했다.


나의 어제를 바라보며, 그 안에 종종 대던 나를 응시하며, 나를 생각한다. 나는 그게 무엇이든 좋아하면 정신없이 빨려드는 사람이다. 잔뜩 상기된 마음에 내가 녹아내리는 것조차 모를 만큼. 아니, 열기에 금세 형체가 사라질 걸 알면서도 무너져 내려 질척거리는 그 마음에 온 일상이 뒤엉켜버릴 걸 알면서도 뛰어든다. 아니, 차마 뛰어들지 못한 채 발끝으로 콩콩 두드려보고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느새 두 주먹 불끈 쥐고 두 발을 쿵 담가버린다. 이미 풍덩 빠져버렸으니 할 수 없다며 앞으로 발걸음 뗀다. 이왕 닿았으니 즐겨보자며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애써 큰 소리를 높여본다. 그렇게 무서워도 끝까지 간다. 아니, 가려고 한다. 되돌아가는 건 더 무서우니까. 그런 나를 더 이상 떠밀지 않고 손을 내밀기로 한다. 한 걸음 뒤에서가 아니라 한 뼘 옆에서.


오늘도 늘어진 타로 카드 위에 내 마음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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