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담아 Jul 10. 2023

꼭 그걸 먹어야 하나요?(1)

나만의 전라도 음식 탐방기

전라도에 왔으면...!!


"이 책은 꼭 읽어봐야해. 요즘 이 노래가 유행이래."

스무 살에 만난 내 첫사랑이 자주 입에 달던 말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남들이 하는 걸 꼭 해야해?" "남들이 다 해서 싫어!"

입을 삐죽이며 그 애가 내미는 것들을 밀어냈지만 결국 그 애 손을 잡고 중앙 도서관에서 빌린 <태백산맥>과 <한강>에 푹 빠졌고, 당시 인기 있던 음식점에서 여러 그릇을 싹싹 비운 것도 사실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게 몇 안 되는 나의 연애사에서 가장 보통의 연애였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유독 내 첫사랑을 마음에 들어했다. 생각해보면 두 사람의 성향은 꽤나 비슷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대세를 당연히 따르는 습성. 나와는 다른 길을 택하는 주류적 특성. 


여행도 비슷했다. 여행을 갈 때면 엑셀파일로 꼭 해야할 일을 정리해 나를 놀라게 했던 그 애와 조금 다르긴 했지만, 남들이 가는 곳을 가야 한다는 기본 신념은 엄마에게도 있었다. 이번 워케이션의 시작을 함께 했던 엄마는 '무조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말하면서도 '음식은 전라도가 최고'이고, '전라도에선 어딜 들어가도 다 맛있다'며, '전라도에 왔으니 걸게 한 상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심 엄마와의 식사 메뉴를 고민했던 나는, 엄마의 '전라도에 가면~'이라는 레파토리가 반복될 때마다 계획했던 식당 리스트를 지워갔다. 그리고 결국 은파호수공원 근처의 '궁전 매운탕'으로 향했다. 그곳은 김치 두어 종류만 나왔던 서울의 매운탕 집과는 달리 '전라도답게' 다양한 찬이 나왔고, 그 찬들은 과연 '전라도스럽게' 하나같이 제 몫을 성실히 해냈다. 덕분에 엄마의 얼굴엔 함박 웃음꽃이 피었다. 그게 이번 워케이션에서 '전라도다운'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였다. 여행에서도 뭔가 삐딱한 나의 마음이 발동된 탓이다.


"남들 가는 곳을 꼭 가야해?"

여행을 갈 때마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여행 가기 전 정보 수집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엉성항 계획표를 만들 할 때마다 유명한 관광명소, 인기 있는 맛집들은 내 리스트에 없을 때가 많았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남들이 가는 곳을 굳이 가고 싶지 않은 이상한 심보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군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다름아닌 스페인 음식 전문점이다. 


첫 만남은 우연으로 시작되었다. 남들이 다 가는 관광 명소를 피해 그저 어설픈 볕 사이를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길이 닿은 곳이 바로 '영화시장'. 입구에 보이는 방앗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장 어귀에 살던 어린 시절엔 매우 익숙했던 그 풍경이 이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탓인지 예상치 못한 반가움이 내 발목을 잡아 끌었다. 소란을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한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닫은 상점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다행히 폐점을 한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유독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다. 작지만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닫힌 문 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 이름도 매력적인 '돈키호테'. 그 자리에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후기와 평점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 오늘의 저녁은 너로 정한다! 그렇게 그곳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첫 방문의 기억부터 매우 흐뭇했다. 음식 맛도, 분위기도 훌륭했다. 바 자리에서 보이는 깔끔한 조리과정도, 무심하게 기본을 다 하는 서비스도 마음에 들었다. 다른 곳에서 잘 보지 못했던 신선한 메뉴도, 집에서도 만들어 먹는 흔하디 흔한 감바스도 감동적이었다. 마늘과 올리브 오일, 새우 그리고 페퍼론치노. 그 어떤 것도 과하게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단정하고 깊은 맛을 냈다. 화려하게 부러 꾸미지 않은 맛, 정직하고 단단하면서도 품위 있는 맛. 그 어려운 길을 뚜벅뚜벅 가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의 올리브 오일이라면 텀블러에 넣고 들고 다니면서 힘들 때마다 벌컥벌컥 마실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이번 워케이션에서도 연속 이틀이나 방문했지만 주문하는 메뉴와 자리한 테이블, 함께한 사람과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매번 다른 맛을 내는 그곳은 여전히 질리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마법사와 연인, 그리고...(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