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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Jul 08. 2023

마법사와 연인, 그리고...(2)

'타로'로 보는 봄에 떠난 워케이션

마법사와 함께 하는 연인? 인연!  


그 무한한 매력으로 '조용한 흥분색'에서 '독립출판학교' 첫 번째 수업을 진행했던 나는, 그 외의 시간에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냈다. 서울에서 함께 출발한 엄마와 1박 2일을 함께 보냈고, 이후 1박 2일은 주로 '조용한 흥분색'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의 1박 2일엔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함께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들이 내게 나누어준 건 시간 뿐이 아니었다. 자신의 에너지와 아이디어, 그리고 응원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 수많은 순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서울에서 '여행' 온 친구들들이 내어준 시간이었다. 그들과 함께 보낸 밤 속에선 으레 친구 셋이 만나면 하는,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 말고 또 다른 하나가 더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일! 놀러와서 그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일은 이렇게 벌어졌다. 근황토크를 하다보니 제주 북페어 이야기가 나왔고, 그걸 준비했던 내 수고를 듣던 두 사람은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그게 굉장히 귀찮은 일이고, 당신들은 이곳에 놀고 쉬기 위해 온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하여 우린 뜨끈한 숙소에 엉덩이를 붙인 채 밤 늦도록 윤종신, 전람회, 성시경을 넘나들며 종이를 접었다. 


문득 그 따스한 밤을 만들어 낸 건 바로 '연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워케이션의 총운으로 마법사 카드를 뽑았던 내가, 구체적인 과정에서 뽑아든 카드 중 하나는 바로 6번 연인이었기에. 물론 연인은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이를 뜻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사랑이 오가는 사이가 꼭 흔히 '애인'이라 칭하는 관계 뿐이겠는가. 그 미세한 색채 때문에 언어의 규정을 받지 못한 애정부터 우정, 정, 연민 등 다른 단어로 표현되는 마음까지... 그 수많은 미묘한 감정으로 엮인 우호적인 관계를, 연인 카드는 품고 있다. 그러니 단순 노동을 좋아한다는, 야물지 못한 내 손을 믿을 수 없다는 말로 나의 미안함을 다독이며 밤새 함께 종이를 접어준 친구들이, 그들의 마음이 바로 연인이 아닐까?



그리고,


워'케이션으로 채운 밤을 지나 새로운 아침을 맞이 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워'케이션'으로 들어섰다. 느즈막하게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일을 위한 준비 운동이 아닌, 그저 서서히 잠에서 빠져나오는 움직임을 지나 은파 호수 공원으로 향했다. 부서진 햇볕에 반짝이는 물결, 그 곁에 고요하게 벚꽃이 잎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사방으로 걸어도 나만의 공간이 충분히 확보될만큼 잔잔했고, 지나는 걸음마다 피어오르는 봄을 느낄 수 있을만큼 활기찼다. 겨울 내내 꽁꽁 묶여 있던 긴장을 푼 봄은, 제법 느슨해진 틈 사이로 온갖 생명의 숨결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그 간질간질하고 따스한 바람이 호숫가를 걷는 내내 두 뺨과 머리칼을, 귓등과 목덜미를 스쳤다. 옷이 바람에 펄럭여도 전혀 춤지 않았다. 따스한 봄볕이 함께했으니까. 그건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린 지구가 준 선물이었다. 


3월 말. 예년 같았으면 절대로 만끽하지 못했을 풍경이었다. 시간을 잃고 헤매다가 겨울을 밀어내고 성큼 와버린 봄이, 유래없이 계절보다 앞서 터져버린 꽃봉오리들이, 준 보석같은 시간이었다. 너무 종잡을 수 없는 지구의 변덕 때문에 마냥 설레기만 할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웠던 것도, 위로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망나니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만 했던 시간 속에선 도무지 마주할 수 없었던 장면이었으니까. 


나도 올해의 봄처럼 시간과 방향을 잃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길을 잃은 봄 덕에 아름다운 위로를 얻고 나니 작은 기대가 생겼다. 도무지 앞을 알 수 없어 방황하는, 그저 엉킨 실타래만 쥐고 있는 내게도 이런 마법같은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게다가 내겐 멋진 인연이 함께하지 않은가. 그래서 조금 더 궁금하다. 나 혼자 걸어가는 길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판에 나와 만날 또 다른 존재와, 그들과 함께 만들어갈 시간은 더욱 알 수 없는 법으니까. 앞으로의 봄이 더 설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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