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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Jul 11. 2023

꼭 그걸 먹어야 하나요(2)

외부자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스페인식 저녁을 만끽한 다음날의 오후는 중식이었다. 그곳 역시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조용한 흥분색'에 들렀다가 다시 시내로 가기 애매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결과였다. '조용한 흥분색'에 들를 때마다 무심히 스쳐지나갔던 그곳을, 친구들까지 내려온 마당에 가는 게 맞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 맛집'이라는 사장님의 귀띔에 용기 얻고 '용궁반점'의 문을 열었다. 주문을 넣자마자 주방 안에서 튀김옷을 분주하게 입히는 사장님의 손길이 보였다. 그 순간 이미 마음 속으론 '합격'을 외쳤다. 미리 튀겨 둔 탕수육을 데우는 게 아니라 바로 튀김옷을 입혀 갓 튀긴다면, 그런 태도로 만드는 음식이라면 맛이 없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과연, 실제로 우리 앞에 펼쳐진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특히 탕수육은 부먹파도 찍먹파로 만들만큼 씹을 때마다 바삭한 튀김옷이 입 안에서 경쾌하게 부서졌다. 


상추튀김이 유명핟다는 광주에서는 길을 걷다 우연히 바글대는 후토마끼 집에 들어가 좋아하는 소바 후토마끼를 먹었고, 나주곰탕 거리에서는 신나게 구경하던 작은 박물관 옆에 자리한 식당에 들어가 애호박찌개를 먹었으며, 먹거리의 고장 목포에서는 현지인이 운영한다는 가성비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통화할 때마다 무엇을 먹었냐고 묻던 엄마는 '먹을 거 많은 전라도 가서 무슨 청승이냐'며 내가 고른 메뉴들을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물론 매번 최상의 만족을 가져다 준 건 아니었지만 나는 대부분 내 선택에 만족스러웠다.


외부자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반드시 해야한다는 것들은 다수의 선택이다. 그건 당시의 많은 이들이 택한 것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쌓인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다. 목소리와 시간이 만들어낸 흐름은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때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전라도스러운' 것들. 물론 전라도 지역만의 특색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있다. '걸게 나오는 한 상' 같은. 그리고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관광객들이 가진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나주곰탕거리에 사는 사람들도 곰탕만 먹진 않을 것이고, 전라도에 사는 사람도 가벼운 한끼와 브런치를 즐길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자연스러움을 만나고 싶었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자본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화려한 맛집 말고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소박하지만 묵묵한 맛집. 크진 않지만 성실과 자부가 느껴지는 그런 공간을 만날 때마다 반갑다. 그곳에서 찾아내는 생소한 자연스러움이 즐겁다. 이를테면, 서울에서는 흔치 않은 중국집의 김치라든가, 서울 백반집에서도 만나기 힘든 갓김치를, 다른 여러 종류의 김치와 함께 콩국수 집에서 만나는 기쁨 같은 아주 사소하지만 놀라운 순간이 좋다.


목포 항구를 걸을 때 스쳤던 배 위에서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노동자이 빼곡한 장면이나 '국제결혼'과 '한국어 과외' 광고를 내건, 현지인이 운영하는 베트남 식당은 얼핏 보면 전혀 '전라도스러운' 풍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철저히 외부자인 내가 그린 이미지 속에서 덜컥거리는 것일 뿐 이미 그건 매우 '전라도스러운' 일부이다. 무지가 만들어낸 나만의 삐뚤어진 시선으로 온전히 그들과 같은 현지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방인의 시선을 내려놓고 그들과 나란히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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