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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Jul 17. 2023

봄이 선물한 인연(2)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나주에서 우연한 인연을 만났다면 목포에서는 예전에 한 번 스쳤던 인연을 다시 마주했다. 물론 상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몇 년 전 '괜찮아 마을'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고호의 책방'에 다시 들렀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특유의 단정한 고요함을 잃지 않는 그 색깔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당시 공간을 잠시 빌려 진행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지금의 '담아드림'을 만들었으니 여러 모로 내겐 의미 있는 곳이기도 했다.

"비가 그쳤나봐요. 전혀 비를 맞지 않은 표정인 걸 보면."

사장님의 첫 인사에 마음의 빗장이 조금 열렸다. 엽서의 재고를 물어본 내 작은 용기는 살짝 열린 빗장을 조금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고른 책과 엽서를 계산하면서 우리의 거리는 훨씬 더 좁아졌다. 서울살이를 하다 몇 년 전 목포로 내려왔다는 사장님은 자신이 주워들었던 목포의 지난 시간들에 대해 풀어놓으셨다. 고작 30년 전만해도 인구가 45만에 육박했다는, 당시 명동의 땅값과 맞먹는 호황을 누렸다는, 거리의 인구가 바글바글했다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지난 영광을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목포 주변 소도시의 관광 정보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어릴 때 들었던 노래에 나오는 이 가사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 중에서도 무지하게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만 '꽃'에 비유하는 거 아닌가? 못생긴 사람이 수두룩한데, 거기에 외모와 무관하게 꼴보기 싫은 사람까지 더하면 아름답기는커녕 추한 사람이 한 가득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이 꽃만큼도 아니고,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가?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나는 그 말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맞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꽃이 남긴 아름다운 잔상은 한 순간이지만 사람이 남긴 따스한 자국은 오랫동안 머무는 법이니까.


한 사람이 품은 우주가 알려주는 정보와 그로 인해 열리는 새로운 세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도 만만치 않다. '수미 식당' 사장님이 들려주신 60년대 전라도 작은 도시의 풍경, 이제는 나주시에 편입되어 이름조차 사라진 그 땅에서 자란 작은 배추를 밭에서 직접 샀던 기억들, 나주로 시집온 뒤 만나지 못했던 동네 어른을 식당에서 조우한 사연, 마늘 주사와 비타민 주사를 맞으며 식당을 운영하는 지금의 일상까지. 한 사람이 품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낯설지만 반가웠다. '고호의 책방' 사장님이 들려준 목포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공식적인 자료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적 기억과, 그 조각들이 모여 만든 공적 이야기가 기뻤다.


아름다움이란 단지 예쁘기만 한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흔들리면서 단단해지는 그 고된 과정을 겪어낸 마음, 아득한 혼돈 앞에서 옆 사람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는 따스함, 연약해서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쓰리게 용서를 구하는 용기... 이 모든 것들이 그저 곱디 고운 것보다 더 깊은 아름다움을 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고개들어 바라보는 꽃나무보단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이름모를 작은 들풀이 좋다. 그 익명의 아름다움이 나와, 내가 만난 이들이 품은 미의 온도와 닮은 것만 같아서.


이 찬란한 아름다움 앞에서 망설임이 앞섰던 때가 있었다. 찰나의 인연이 선물하는 반가움보다는 아쉬움에 혼자 가슴앓이 하는 날의 슬픔이 더 컸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 잠시 스쳐지나는 이 인연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다는 걸 알기에, 물리적 헤어짐이 마음에서의 결별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기에 이제는, 괜찮다. 그저 설레는 마음으로 봄이 선물할 또 다른 인연을 기다릴 뿐. 그들처럼, 당신처럼 아름다운 인연을.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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