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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Jul 18. 2023

서울 사람의 제주 살이(1)

제주행 배에 오르다

모두가 그렇듯 제주 살이를 막연한 꿈으로 품고 살았다. 단, 한 달 살이가 아닌 일 년 살이. 이미 게스트 하우스 스태프로 지내며 한 달 반 살이를 했기에, 한 달은 왠지 시시했다. 그러면서도 한 달조차 쉽지 않았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으니까. 정해져 있는 일정을 조율해야 했고, 그걸로 겨우 벌어쥔 푼돈으로 숙박과 식비 등을 해결해야 했다. 그런 현실적인 생각들이 생각 회로를 스치면 '언젠간'이라는 상자 속에 제주 살이를 쑥 넣어버리고 일상으로 고개를 훽 돌려버렸다. 한 번도 그런 꿈을 꾸지 않았던 것처럼. 


운전을 시작한 뒤에는 '언젠간' 속 상자를 열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심지어 올해의 계획 속에 '다른 도시 한 달 살이'을 적어놓으면서 일 년까진 아니더라도 한 달 정도는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덜컹 숙소와 배 편을 예약했다. 비록 일 년 살이는 아니지만, 차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로망만큼은 지키고 싶었기에. 하지만 걱정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아직도 운전석에만 앉으면 모든 것이 불안한 초보였으니까.


배는 목포에서 9시 출발 예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선잠 끝에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떴다. 빠르게 짐을 꾸려 내 몸과 차에 연료를 채운 뒤 선착장으로 향했다. 바짝 곤두선 긴장 탓인지 차의 속도는 급속히 느려졌다. 다행히 선착장 입구부터 주차 공간까지 직원분들이 촘촘하게 서 계셨고, 그들의 안내 덕에 무사히 주차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라'는 말에 '모른다'고 한 내 대답에 직원 분이 당황하고 만 것! 최대한 해맑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준비해 간 나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어딨는지 모른다'고 자세히 설명했고, 잠시 어이를 상실한 그 분은 재빨리 사이드 브레이크를 찾아 '내릴 때 이 부분을 누르라'고 친절히 안내해주셨다. 감사한 마음을 듬뿍 담아 인사를 드리며 차에서 내린 내 발걸음은, 새로운 미션을 완수했다는 뿌듯함에 한결 가벼워졌다.


제주로 가는 여객선은 처음이었다. 이코노미석을 예약한 나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거나 누울 수 있는 방을 배정 받았는데,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어르신들이 계셨다. 대부분 벽에 기대어 있었고, 나 역시 5시간을 버티기 위해 콘센트가 있는 벽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있었고,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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