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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매력

나는야 소심한 관종

by 정담아


한창 ‘반전매력’에 빠졌을 때가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 모두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저 나이 앞자리만 바뀐 여자 사람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스무 살 무렵이었다. 사랑받던 새내기를 지나 현실에 눈뜨며, ‘예쁨보다 매력!’을 외치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금 보면 까마득히 어린 청춘이지만 당시엔 까마득한 어른이던 복학생 오빠가 다 먹은 커피 우유팩을 털며 말했다.


“반전매력이 짱이지. 깨작거릴 거 같은데 엄청 잘 먹어! 까탈스러울 거 같은데 되게 털털해! 이럼 끝나지.”

“어? 난데요? 털털하게 생겼는데 엄청 까칠하고 예민해! 반전매력!”


‘그냥 예쁘고 말라야 한다는 말 아니냐’며 삐죽거리는 입 사이에서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선배들은 어이없다는 눈빛을 쏘아대며 다 완성된 우유팩을 던졌다. 나는 의외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반전 매력이지 않냐는 눈빛으로 팩을 받아쳤다.


반전매력. 나는 그것과 일가견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던 말속에는 늘 반전이 숨어 있었으니까.

넌 진짜 똑똑한 것 같다가도 가끔 보면 참 모자라. 착한 줄 알았는데 성깔 있다 너. 보기보단 말랐네.

그게 무슨 매력이냐고들 하지만 모든 반전엔 매력이 따르는 법. 기대하지 않던 무언가가 튀어나왔을 때 그게 무엇이든 주목하게 되니까. 원래라면 전혀 빛나지 않을 것에 생기를 더했다면, 그래서 눈길이 한 번 간다면, 그게 매력 포인트 아닌가.


내가 가진 최고의 반전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소심한 관종끼다. 대놓고 나서진 않지만 가만히 있음에도 그 존재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어려운 길을 가는 인간. 사이드에 고고하게 앉아 관찰자의 시선을 던지다가 등 떠밀려 센터에 서게 되면 누구보다 뜨거운 인사이더로 변하는 인간. 그게 바로 나다.


학창 시절엔 단 한 번도 임원을 놓친 적이 없다. 안 하고는 살 수 없었지만 절대 먼저 하겠다고 나서진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후보로 추천해주길 기다렸다. 나는 소심한 관종이니까. 소심한 관종은 그냥 관종에 상전끼가 더해진 요상한 캐릭터이므로 절대 먼저 움직일 수 없다. 속이 타들어가도 기다린다. 그리고 후보가 되어 판이 깔리면 내 세상이 된다. 형식적인 연설 타임. 그 짧은 시간에 좌중을 사로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단, 거짓말로 현혹해서는 안 된다. 그건 내 마음에 걸리는 일이니까. 지킬 수 있는 말만, 진실성 있게, 단단하고 자신감 있는 표정과 말투로 던진다.


그렇게 당선이 되고 나면 종종 이름이 불릴 때가 있다. 새 학기 첫 시간이나 수련회 가는 버스, 캠프파이어 같은. 절대 먼저 나서는 법은 없었지만 내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노래든 춤이든 마다하지 않고 마이크를 잡거나 무대에 올랐다.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가 좋았다. 무엇보다 모범생이라는 편견에 던지는 작은 파장이 통쾌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반전 요소는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단단한 무언가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는 일. 그 균열이, 그 틈새로 피어나는 의외성이 좋았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 의외성에 열광하지만 조금 변한 게 있다면 바로 방향성이다. 어릴 때 내가 원하는 의외성은 밖을 향했다. ‘와, 너 이런 것도 잘하네.’할 때마다 ‘응, 근데 나 이런 것도 잘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나에게 잘 보이고 싶다. 내 마음에 들고 싶다. 다행히 나는 반전으로 가득한 내가, 쏙 마음에 들진 않지만 썩 마음에 든다.


똑똑한 척 논리 정연한 말을 내뽑지만 정작 일상에선 바보인 내가,

후안무치들에게 속으로 독설을 날리면서도 그 뻔뻔함을 은근 부러워하는 내가,

이젠 좀 무뎌졌으면 좋겠다면서도 혹시라도 타인의 아픔에 둔감해질까 걱정하는 내가,


좋은 글에 감명받으면서도 그 능력에 배 아파하는 질투쟁이인 내가,

남들 같은 글조차 못 쓰면서 남들 같은 글은 절대 쓰지 않겠다는 한심한 내가,

깜냥 부족을 탓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도 왜 이런 원석을 몰라 주냐고 한탄하는 어이없는 내가,

나 따위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건 진작 알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픈 내가,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찬 이런 내가,

나는 참, 애처롭고 애틋하다.


그리고 더는 모순을 극복하려 애쓰지 않는다.

이치에 맞지 않는 두 가지를 끌어안고 끙끙대는 나는, 그 의외성에서 피어나는 매력덩어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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