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담아 Nov 20. 2023

당신의 오늘에 아름다움이 머물길 바라며,

겨울의 문턱에서 펼쳐보는 봄 편지

생일날 짠-하고 도착할 수 있게 일찍 편지를 써보려 했건만, 예상보다 많은 일과 컨디션 난조에 이제야 펜을 듭니다. 약간의 변명을 덧붙여보자면, 바쁜 시간 속에 쫓기듯 말고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싶었거든요. 서울을 떠난지 7일차 되는 오늘, 처음으로 혼자, 노트북 없이 밖을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I’인 저는 함께도 좋지만 오롯이 ‘혼자’일 때 에너지가 더 차오르는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오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군산, 정급, 변산, 나주, 광주를 지나 이곳 목포에 와있습니다. 왠지 제주보다는 조금 덜 로맨틱한 명사지만 저는 그래서 이곳이 더 특별한 기분이에요. 일부러 작은 도시, 익숙하지 않은 도시를 찾아가보았습니다. 목포는 2년 전 첫 방문 이후 두 번째이고, 정읍과 변산, 나주는 처음이었어요. 놀랄만큼 고요하고 낡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고요가 제겐 평화였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쓸쓸함일 수도 있겠지요. 전라도 지역은 곡창지대여서 그런지 빠르게 성장과 번영을 누렸고, 그만큼 수탈은 심했다죠. 


그래서인지 제가 지나온 지역모두 과거의 항쟁과 관련된 역사관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그 도시의 풍경들이 꽤나 좋았음에도 과거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물론 과거의 시간을 기억해야하 하지만, 그래서 저는 그런 박물관에 방문하는 걸 매우 좋아하지만 여러 곳의 이야기들이 조금 겹쳤거든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구성이 있다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들더라고요. 그럼에도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도시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군산과 광주, 목포에서 책방에 들렀어요. 여행을 가면 늘 그 지역 책방에 가는 게 습관이거든요. 목포에서 간 ‘고호의 책방’에서는 이런 문장을 만났어요. ‘할 수 있는 한 아름다운 것에 감탄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책방에는 ‘When I Dream’이 흘렀어요. 문득 ‘아, 꿈꾸듯 아름다운 걸 들여다봐야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거든요. 얕게 깔리는 빗소리와 그 위에 펼쳐지는 노랫소리, 불쑥 마주한 문장이 촉촉하게 마음에 스며왔습니다. 아름다움이라... 당신의 오늘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었을까요?


저는 어제 광주에서 나주를 지나 이곳 목포에 오는 동안 몇 번의 아름다움을 마주했습니다. 일단 영산강변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강가에 펼쳐진 연한 분홍과 노란 꽃잎이 너무 예뻐서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노랑, 분홍이 봄의 색인지 알겠더라고요. 어쩜 자연의 색은 촌스러움 없이 그리도 서로에게 잘 스며드는 걸까요? 각자도 아름답지만 혼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내세우지 않는 그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참 멋졌습니다. 그리고 또 식당에서 푸근한 인심 속에 묻은, 길가의 낯선 이가 보내는 미소에 묻은 아름다움도 만났어요. 당신도 수많은 시간 속에서 뜻밖의, 혹은 익숙한 다름다움을 만나길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나의 친구님, 생일 축하해요.


4월 끝자락의 봄을 담아, 드림

이전 03화 새 생명을 품은 친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