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담아 Nov 27. 2023

같은 길을 앞서 걷는 당신에게

든든한 친구에게 띄우는 마음

당신이 있는 그곳은 안녕한가요? 저는 우리가 처음 연을 맺은 군산을 지나 정읍과 변산, 광주, 나주를 지나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어젯밤 미리 이곳에 도착한 친구와 만나 식사를 하고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카페에 나왔어요. 노트북을 가지고 나왔는데 라디오 소리가 너무 커서 집중이 되지 않네요. 음악 대신 라디오가 나오는 카페라니, 너무 낯설고 신기해요. 이전까지는 동네 주민분들이 대거 오셔서 귀한 제주 방언을 잔뜩 들었답니다. 이게 낯선 곳에서 만나는 서걱대지만 신비로운 순간들이겠죠? 


지금까지 집을 떠나온 일주일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평소와 비슷하게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건 똑같지만 바뀐 공간과 다른 공기 속에서 매일 조금은 다른, 낯선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하루는 여전히 바쁜가요?


오늘 만난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 기쁨도, 슬픔도 없이 그저 고만고만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고.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삶이란 참 별 거 없다고. 어릴 때는 뭐 그렇게 커다란 꿈을 꾸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큰 동요 없어지는 나이가 고맙다가도 문득 점점 더 시간이 흐르면 정말 소소함만 희미하게 남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작가님의 호탕한 미소가, 천진한 목소리라 떠올라요. 그러면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더 시간이 자니도 단단하지만 마음껏 기뻐하고 또 슬퍼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나보다 앞선 이가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든든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당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해요.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욕심 나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아 안달나는 이 망할 놈의 창작을 하기로 하길 잘했다고.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이 녀석 때문에 아마 저는 평생 평온하지만은 않을테니까요.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동료를 만나 기쁩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 능력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는 게 감사합니다.


이곳은 비가 내려요. 바닷바람은 춥고 저는 매우 피로합니다. 해야할 일은 많은데 노곤해서 그저 잠으로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에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정적을(사장님이 라디오를 꺼주셨어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약간의 빗소리를, 이곳에서 마신 알싸하고 부드러운 생강라떼를. 제주에서 차와 함께 배를 타고 도착했다는 작은 성취감을, 새로운 숙소에 적응할 귀찮음과 설레는 마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 조각들이 제 안 어딘가를 뒹굴다가 문득 나타나는 순간이 있겠죠? 그러면 그때 마치 이 순간 당신도 함께 했다고 착각할 것만 같아요. 지금 당신이 꼭 옆에 있는 것만 같거든요. 그립습니다. 곧 또 만나요. 


제주 밤을 담아, 

담아 드림

이전 04화 당신의 오늘에 아름다움이 머물길 바라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