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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Dec 11. 2023

어른들의 세계 앞에 선 너에게

전 담임, 현 친구가 띄우는 마음

얼마 전에 너에게 연락이 왔다. 입사 날짜를 앞두고 조마조마한다는 카톡이었다. 교복 입고 종종대던 열여덟 꼬마가 벌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나갈 채비를 마쳤다니 참 신기하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언제 그렇게 자랐을까? 네가 그렇게 쑥쑥 커가는 동안 주름이 늘어가고 체력이 약해졌을 나를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너의 그 시간들이 결코 쉽게, 그저 고요히 흐른 게 아니라는 걸. 얼핏 보기에 훌쩍 지난 것만 같은 그 시간이 째깍 째깍 느리게 갔을 거고, 그 모든 시침과 분침, 초침 사이에 너의 땀방울과 눈물방울이, 웃음과 보람이, 고민과 갈등이 걸려있다는 걸. 또 다른 너에게도 연락이 왔지만 크게 다르진 않았다. 교환학생 선발 면접을 앞두고 고민하는 너, 교직 이수 신청을 두고 갈등하는 너, 토익 시험을 앞두고 초조해하는 너도 모두 흐르는 시간을 바삐 달리고 있었다.


대체 누가 요즘 청년들이 편히 산다고들 할까?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가끔 매 순간을 맹렬하게 살아가는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어제와 오늘이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던 내 삶을 돌아보곤 한다. 너희들처럼 그렇게까지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한 적이 있던가? '오운완'을 외치고, 피부와 외모 관리에 신경 쓰는 청년들을 보여 '외모에 너무 치중한다'고도 하지만,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외모'만' 신경쓰는 게 아니라 외모'마저' 열심히 관리하는 것 같아서 대단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


정치권에서는 청년들을 외친다. 너희들 말로 '그놈의 MZ세대'를 팔아대지. 그런데 늘 뚜껑을 열어보면 청년을 향한 정책은 실종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게 싫은데 가장 싫은 건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다. 이 나이 먹도록 이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난 무얼 했나, 싶을 때. 그래도 마냥 패배감에 젖을 수만은 없기에, 나름의 포지션을 정했다.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되겠다고.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결론이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큰 기쁨도, 슬픔도 없이 그저 고만고만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고.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것 같고, 삶이란 참 별 거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때는 뭐 그렇게 커다란 꿈을 꾸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큰 동요가 없어지는 나이가 고맙다가도 문득 점점 더 시간이 흐르면 정말 소소함만 희미하게 남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그럴 때 문득 한 어른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호탕한 미소가, 천진한 목소리가 피어올라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더 시간이 자니도 단단하지만 마음껏 기뻐하고 또 슬퍼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보다 앞선 이가 단단하게 서 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렇게나 든든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나도 그런 작은 위로 하나 선물하고 싶었다.


너의 모든 순간 곁에 있어주고 싶었고, 힘이 되어 주고 싶었지만 늘 마음만 두고 왔던 것 같아서 미안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일이 많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너와 함께 하지 않는 모든 순간에도 나는 너를 응원하고, 네 편이 될거라는 걸. 그리고 아주 조금은 너를 위하는 마음으로 나는 언제 어디서나 단단하게 두 발을 딛고 멋지게 걸어갈 거라고. 그러니 혹시라도 이 차가운 세상에 나와 외롭고 쓸쓸하거나 서러울 때 너도 조금만 견뎌주었으면 좋겠다. 그 슬픔이 터져나올 때면 내게 연락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세상에 부딪히느라 딱 그 순간의 타이밍을 놓칠 순 있겠지만 조금 늦더라도 곁에 있어줄테니까.


지금까지 삶을 지내오느라 참 수고했고, 덕분에 내 삶도 조금 더 달콤했다.

조금 늦었지만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 더 마음껏, 자유롭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길.


실은 매순간 흔들리고 있는 어른 친구가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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