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즐기지 못하는 날, 어쩌면 나에게 띄우는 편지
서울과 당신은 안녕한가요? 이곳 목포는 옅은 비가 내립니다. 오늘만큼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노트북을 두고 나섰습니다. 가벼운 가방 덕인지 마음도 덩달아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책방에 들렀습니다. 2년 전쯤 처음 이곳 목포에 왔을 때 한 눈에 반했던 ‘고호의 책방’에 갔어요. 늘 그렇듯 오랫동안, 조용히, 천천히, 그곳을 들여다봤습니다. 사고픈 책이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결심했죠.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고르지 않을, ‘절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사지 않을 책을 사자고요. 저만의 작은 일탈이랄까요?
그렇게 처음 후보로 집어든 책이 <이집트 상형 문자 배우기>였습니다. 문자를 읽고 쓰다 죽을 것만 같은 삶이지만 그래도 ‘상형’문자는 조금 낯설잖아요! 그러다 또 다른 책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곳은 책방 이름처럼 ‘고호’에 대한 것들, 그와 비슷한 ‘미술작가’에 대한 테마를 담은 책이 꽤나 많았거든요. 결국 고호와 관련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실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건 올가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였어요. 너무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라니. 이건 운명이야! 이 작가의 생각을 엿보면서 이번 워케이션 동안 나도 멋진 글을 써야겠어. 너무 멋진 만남이다. 하루에 한 편씩 꼭꼭 씹어 읽어야지! 그리고 쑥쑥 자라나야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다 생각했죠. 그러지 말자. 일에 대해 생각히지 말자. 그리고 얼핏 들여다보니 그 정도로 끌리지는 않더라고요. 금방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운명은 무슨 운명! 내가 만든다, 그 운명! 그리고 다른 책을 구경했어요.
역시 그래픽 작가셨던 대표님의 이력 덕인지 미술 책이 많았어요. <터무늬 있는 경성 미술 여행>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실은 ‘경성’에 눈이 갔어요. 제가 작업하고 있는 시나리오의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거든요. 하아- 또 일에 대해서 생각하다니요. 정말 워케이션인지 출장인지 문득문득 헷갈리는,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매 순간 헷갈리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카페에 와있습니다. 희미한 빗소리를 배경으로 지지직 긁히는 소리가 멋지게 스며든 ‘La Vie Rose’가 흐르고 있어요. ‘목포의 눈물’이라는 콜드브루는 산뜻하면서 가볍지 않아 제 마음에 꼭 드네요. 목조로 된 구조에 커다란 장미가 박힌 벽지, 적당한 잡음과 통통 튀는 리듬이 섞인 음악까지... 이곳의 시간은 멈춰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벽에 걸린 시계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이 분명 있겠죠? 그 루틴을 잠시 벗어나고자 일탈한 이 순간에도 먹고, 자고, 책방에 들르고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요.
시간을 머금은 장소에 머물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기보다는 흐르는 시간을 멋지게 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30년 전에는 엄청난 번영을 누렸다는 이곳 목포는, 절반가량으로 줄어든 시민들이 과거를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새롭게 적응하며 또다른 움직임으로 새로운 삶을 꾸려간다고 합니다.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당신의 삶도 크고 작은 흥망성쇠 속에서 아쉬워하고 좌절하기보다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품으로 멋지게 익어가길 바라봅니다. 오늘의 당신도 안녕하길.
담아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