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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Jan 08. 2024

미래의 당신에게,

오늘의 내가 띄우는 마음

편지를 받는 순간에 지금 이 찰나를 당신이 기억할까요? 미뤄두었던 빨래를 널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날입니다. 당신은 교보 담당자 때문에 화가 났고, 내가 앞방 손님의 전화 목소리에 언짢은 날이기도 합니다. 토마토와 고구마, 달걀만으로 부실한 식단에 다이어트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당신의 염려와는 달리 저는 어쩌다보니 늘 풍성한 음식과 함께 통통하게 오른 배를 잡고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시간을 읽고 있는 당신의 지금은 어떤가요? 이미 서로의 오늘을 알고 있어서인지 이 편지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도착할거란 사실을 알아서인지 당신의 오늘보다는 이 편지를 받고 있을 그날이 더 궁금해집니다.


이상하죠? 이렇게나 매일같이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도 늘 할말이 샘솟는 걸 보면 말이에요. 그래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장 나중에 쓰기로 했어요. 가장 할 말이 많고 또 가장 할 얘기가 없거든요. 이미 나의 모든 일상을 아는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까 싶었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주절댄 제 자신이 놀랍네요.


사실은 참 신기했고, 여전히 신기해요. 이 관계가 말이에요. 굉장한 신뢰가 있는데 늘 조심스럽고 든든하면서 애틋하고. 올해부터 제 운이 펴진다던데 그래서 이런 귀인을 만난 건가 싶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늘 설레발치며 좋아했던 관계는 틀어졌던 것도 같아서 아, 나대지 말자! 싶기도 하고요. 또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좋아해서 오래 지속된 사람들도 분명 있는데 말이죠. 늘 곁에 있는 존재보다 상실한 존재에 대한 마음이 컸는지도 모르겠네요. 참 어리석게도 말이죠. 이렇게 어리석은 제게서 늘 좋은 면을 발견해주어 고맙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가장 많이 배운 건 역시 인연의 놀라움과 사람의 힘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만남에 치이고 타인과의 조정 속에서 잃어야했던 것도 많았지만 말이에요. 그들이 없었다면 제 시간이 그토록 풍요로울 수 있었을까요? 또 놀랍습니다. 좀처럼 먼저 손 내밀지 못하는 제게 다가온 다정함들이 말예요. 뾰족한 제가 점점 둥글게 부드러워질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제 삶을 지나간 수많은 이들의 다정함 덕이었겠죠? 그 안에 당신의 따스함도 있을 거예요. 아마 앞으로는 그 비중과 농도가 점점 더 커지고 짙어지겠죠. 내 삶에 스며들어 나를 더 깊게 만들어주는,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당신이 참, 고맙습니다.


어제 누군가 제게 묻더라고요. 요즘 최고의 관심사가 뭐냐고. 저는 ‘지속가능성이’이라고 답했습니다. 꾸준히 오래하고 싶다고. 좋아하는 일을 말이에요. 일이든, 사람이든. 그러기 위해서 불태워버리지 않고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한다고. 또 묻더라고요. 그러려면 뭐가 가장 중요하냐고. 잠시 생각하다 답했습니다. 힘이 빠지는 것, 힘을 빼는 것이라고. ‘아!’하며 수첩을 꺼내 받아 적는 그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큰 이유 중 하나도 이게 아닐까, 하고요. 힘을 빼도 되는 관계, 힘을 빼고 대화해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관계. 우리 삶엔 너무나 큰 힘이 들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함께 하는 모든 일은 조금 힘을 빼고 함께 하면 좋겠어요. 아주 오랫동안 행복하게. 곧 만나요. 그 시점이 오늘이든, 당신의 지금이든 곧! 


조금 힘을 뺀 담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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