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건축물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앞에 붙는 이 여섯 글자가 주는 무게감은 그 도시를 꽤 걷고 나서야 현실로 다가왔다. 처음엔 가볍게 흘려들었던 그의 이름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심히 툭툭 튀어나왔고, 결국 며칠 만에 온몸으로 깨달았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는 걸.
그 시작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였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던 내게 그곳 역시 그저 그런 성당이었다. 사실 서양의 성당이란 동양의 사찰만큼 흔하디 흔한 존재니까. 무신론과 유신론 사이를 애매하게 넘나드는 내게 성당은 과거의 문화유산이자 당시 민중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물이며 현재의 내가 간절함을 내밀어 보는 공간 정도랄까. 하지만 그곳은 달랐다.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웅장함과 열기에 놀라고 말았다.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곳, 가까이 갈수록 고개를 90도 이상으로 꺾어야 꼭대기를 겨우 볼 수 있는 곳, 한 컷 안에 온전히 들어오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아주 멀리서 렌즈를 들이대야 하는 곳. 규모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이를 압도했다.
안에서 느껴지는 꽉 찬 공간감은 밖에서 바라보는 규모의 웅장함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창으로 쏟아지는 빛과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이 경이로움을 빚어냈다. 왜 당시 성당 창문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웠는지 알 것만 같았다. 강렬한 색으로 채워진 창을 지나온 빛이 주는 신비감이 강하게 내리 꽂혔다. 진짜 신이 빛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빛줄기 속을 느긋하게 유영하는 먼지조차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경건해졌다.
'아, 이것이 가우디의 힘인가.'
가우디 작품에서 매력을 느낀 건 자연과 사람이라는 키워드였다. 자연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실용성을 놓치지 않는 것. 자연과 사람을 향한 그의 건축물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과 인간의 편리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해소하지 못하는 현재를 사는 내게 그는 확실히 탁월한 존재로 보였다. 다만, 그런 그의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완공되면 그 앞의 건물들을 다 밀어버릴 거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미래에 허물어질 건물들에 펄럭이는 현수막들이 눈에 밟혔다. 그들의 외침을 담은 몸부림 같았다. 그 소리 없는 절규를 보며 생각했다.
건축물이든, 종교든, 신이든 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짓밟는 건 피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속사정도, 앞으로 전개될 그들의 이야기도 알 수 없지만 진정으로 ‘성스러운’ 가족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가우디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이 그러하듯, 가우디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가우디의 주요 건축물을 돌았다. 건축물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그 뒷이야기에 더 솔깃한 건 사실이었다. 가령, 가우디의 작품인 카사바트요가 있는 거리에는 당시 매우 유명했던 건축가가 지은 건물 두 채가 함께 있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집은 당시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뽐내기 위한 수단이었고, 따라서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앞 다투어 멋진 집을 의뢰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부자들은 존재하고, 그들은 늘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는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좀 더 새삼스러웠던 사실은 과거의 부자들이 부를 과시하던 옛날의 건물들이 현재의 부자들이 투자한 자본의 옷을 덧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본을 위해 옛 건물들을 싹 쓸어버리고 새로운 건축물을 세워버리는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기에. 지난 시간을 싹 지워버리고 새로운 자본을 높이 세우기 바쁜 도시에 익숙한 내게 오랜 역사를 품은 건물 위에 덧씌워진 자본은 생경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따라 지속적으로 그 길에 머물고 있는 자본의 흔적들을 보며 부르주아와 종교를 위해 일한 가우디를 맹렬히 비난했다던 피카소가 생각났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결국 건축과 예술은 종교와 자본, 그 두 개의 뿌리를 자양분 삼아 꽃피는 걸까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도 존재할 수 있을까요?"
가우디와 피카소는 과연 그 답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