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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Apr 15. 2022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송어회 파티

사이버 머니 충전 기념 파티

돈 들어왔다!

어 정말? 확인해봐야겠다.

나도 나도.


잠시 스쳐 지나갈 사이버 머니가 충전된 순간, 우린 그 찰나의 행복을 공유했다. 다음날이면 카드 값과 공과금, 보험료, 후원금 등등 온갖 조직에서 성실하게 충전된 돈을 빼갈 게 빤했다. 그전에 해야 한다. 쇼핑! 우리가 공략하는 품목은 먹거리였다. 야근 퍼레이드에 돈 쓸 시간이 없는 우리를 위해 자본주의란 신은 인터넷 쇼핑을 하사하셨지. 각자 애용하는 어플을 켰다. 먹자 먹자. 파티 파티 파티. 그렇다, 우린 파티를 하기로 했다.


메뉴 뭐로 하지?


세상 중요하고도 심각한 고민이었다. 그간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하나씩 넣어두었던 장바구니를 점검했다. 새로운 품목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송어회 비빔밥. 그 메인 메뉴를 중심으로 곁들임 음식을 하나씩 정해갔다. 자고로 매콤한 요리를 먹을 때는 항상 그 날카로움을 누그러뜨릴 기름기가 필요하다고, 나는 배웠다. 그래서 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W는 차가운 음식을 먹을 때는 한기를 감싸 안을 따뜻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당한 말이었다. 그녀는 새우 완자탕을 선택했다. 그럴듯한 식탁이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좋았다. 각자 맡은 것들을 주문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날을.


드디어 대망의 파티 데이! W는 새우 완자탕을 냄비에 넣고 끓이고 싶다고 했다. 고심 끝에 몇 안 되는 인맥을 사용하기로 했다. 불을 사용할 수 있는 실을 점심시간 동안만 빌리기로 했다. 4교시 종료 종이 치자마자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큰 볼에 두툼한 송어회 조각들을 넣고 자유분방하게 잘린 양배추, 당근, 깻잎 등 각종 채소도 넣었다. 그 위에 매콤 달콤 새콤한 양념장을 넉넉히 뿌렸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신나게 비볐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는 냄비에 새우 완자탕을 넣고 끓였고, 누군가는 프라이팬에 전을 데웠다.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였다. 언제 출근에 울상 짓고, 업무량에 폭발하고, 비상식적인 인간 때문에 분노하고, 애증하는 아이들 때문에 속 태웠냐는 듯 하하호호 웃음꽃이 피어났다. 실을 빌려준 이들에게 소소한 마음을 그릇에 눌러 담아 보내고는 드디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탱글탱글한 송어가 담백했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채소도 그 모든 걸 감싸 안는 양념장이 밋밋할 뻔한 재료들을 앙칼진 맛으로 묶어주었다. 톡 쏘는 맛에 감각을 잃을 것 같을 때쯤 고소한 기름을 살짝 머금은 애호박전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연둣빛 호박의 연한 달큰함이 좋다. 열렬한 전 애호가인 엄마 덕에 어릴 적부터 늘 먹어 온 전이었지만 먹을 때마다 좋다. 메인이라 불리긴 어렵지만 늘 조용히 다른 음식과 밸런스를 맞추는 우리 집의 필수템! 파티에서도 메인인 송어회 비빔밥을 부드럽게 감싸는 보조 역할을 든든히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뜨끈한 완자탕 국물 한 모금하면 한 코스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리고 우린 이 세트를 무한 반복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 혹자는 이 흐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 작은 행복에 취해 거시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경우가 있다고. 소소한 행복을 시스템 안의 아이템 획득으로만 치환해 결국 자본주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무한한 소비로 이끈다고. 나 역시 이 생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일상에서 소확행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단순히 소비해서 사라지는 행복 말고, 무언가를 함께 소비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에 남아,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숨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줄 그런 소소한 행복 말이다.


그리하여, 결국 이 날 나의 행복은 내 몸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어쩌면 아직도. 나의 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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