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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Apr 18. 2022

월요병 퇴치를 위한 이색 리조또

시금치 페스토와 토마토 소스로 완성한 적록 홍삼 도시락

남들 같은 삶을 원했던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새해 달력을 보면 빨간 날의 개수를 제일 먼저 세고, 공휴일이 무슨 요일인가에 대해 날을 세우며, 빨간 날을 기다리는 낙으로 검은 날들을 버티는 그런 삶. 가까스로 그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많은 수의 타인과 같은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느슨한 연대감이 좋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난 대다수의 국민이 앓고 있는 병을 얻게 되었다. 월요병.


오늘 토요일이지?

응. 오늘 토요일인데 내일 월요일이야.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의 부질없는 바람은 Y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랬다. 내일은 월요일이었다. 하아. 싫다. 출근하기 싫다. 너무너무너무 싫다. 나는 아직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바로 출근이라니. 주말에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은 하나도 못했는데.


골골대지 말고 제대로 아프고 싶었다. 병가라도 내게! 하지만 내 몸은 출근을 할 수 있을 만큼, 딱 그 정도로 얄밉게 아팠기에 어쩔 수 없었다. 출근을 하는 수밖에. 그렇다면 만들어야 했다. 출근해야 하는 이유, 월요일을 설레게 할 만한 구실을. 내가 찾은 정답은 하나, 가슴 뛰는 도시락을 만들자!


최대한 에너지를 저장해야 하는 일요일 저녁,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기에 냉장고로 향했다. 집에 굴러다니는 재료들을 모을 작정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해야 하는 것들을 스캔했다. 만든 지 좀 되어 가는 시금치 페스토가 눈에 들어왔다. 유통기한이 꽉 찬 우유도 있었다. 냉동실에 꽁꽁 얼려둔 밥도 몇 덩이 보였다.


훗, 결정했다. 리조또. 시들어가는 소스와 찬밥을 해치우는데 이만한 게 없지. 하지만 우울한 월요일을 업 시키기 위해 나는 2색 리조또를 만들기로 했다. 우중충한 직장생활에 오색 빛깔 칠하기 프로젝트랄까.


싱그러움을 잃어가는 시금치 페스토에 우유를 넣고 졸여 시금치 크림소스를 만들고, 해동시킨 밥을 넣고 마구 볶았다. 소스가 밥알 하나하나에 스며들어야 했기에 약불에 가만히 두어 졸이려고 했으나, 일요일 밤에 날아드는 히스테리를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분노의 주걱질을 이어갔다. 밥알들을 쉴 새 없이 뒤집고 또 뒤집었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네가 맛있어야 내가 내일 행복할지어다.


완성이 된 연두빛깔의 봄맞이 리조또를 그릇에 옮겨 담고 팬을 다시 재정비했다. 이번엔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토마토소스로 붉은 빛깔의 리조또를 만들 참이었다. 적당히 달아오른 팬에 소스를 투하하고 마찬가지로 밥을 넣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열정을 담아 뒤적거렸다. 너도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월요일 아침, 정확한 퇴근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한 시간 일찍 출근한 나는, 업무 시작 전  봄을 담은 나의 도시락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전자레인지로 데울 참이었다. 문제는 그 시점에 교무실의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락을 돌리면 붉고 푸른 빛깔만큼이나 선명한 냄새가 퍼질 게 분명했다. 적막한 그곳에 내 존재를 선명하게 남기고 싶진 않았다. 배고픈 동료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을 때까지도 그곳의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선 그냥 데우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먹기로 했다. 차가우면 밥알이 더 탱글탱글해져 식감이 살아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락앤락 뚜껑을 여니 적록 홍삼의 새색시가 가지런히 누워있는 듯했다. 많이 추웠지? 데워주지 못해 미안해. 힘 있게 뚝뚝 끊어지는 소스가 척 들러붙은 밥알을 씹으며 생각했다. 급식실 말고 밥 먹을 수 있는 공간 좀 마련해주면 안 되겠니. 그리고, 우리 집도 아닌데 직장에까지 전자레인지며 커피포트를 우리가 직접 사야 하냐고. 잠시 이곳을 스쳐 지나간 자가 두고 간 전자레인지가 새삼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월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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