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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Apr 14. 2022

소화불량 유발 직장에서 존버하기 위해

영혼을 위한 닭죽(feat. 토종닭은 내 롤모델)

코로나19가 막 일상화될 무렵이었다. 직장에서 zoom연수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 꽤 진행되었고, 그리하여 이곳저곳에서 이미 zoom이 익숙해진 한참 뒤였다. 전 직원에게 웹캠이 지급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화상 연수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메시지가 며칠 전부터 날아들었다. 바빠 죽겠는 이 시점에 굳이 그걸 꼭 해야 하나 싶었지만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쫓아가려는 시도를 어여삐 봐줘보자, 하는 마음이 아주 없던 건 아니었다. 온 힘을 다해 직장을 아름답게 보려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작동시켰고, 연수는 시작되었다.


나의 눈물겨운 노력이 깨지는 건 정말이지 한 순간이었다. zoom을 통해 ‘어떤’ 연수를 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zoom’ 연수를 하는 게 아닌가. 늘 항상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이 상상력이란. zoom을 통해 zoom 가입 및 사용 방법을 설명하는 진짜 zoom 연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고작 그걸 강의하겠다고 이 난리를 친 거야? 이런, 귀여운 사람들. 정보화가 한참이나 진행된 이 시대에, 그것도 어느 정도 학력 수준이 보장된 집단에서 홈페이지 가입을 연수로 진행하고 있다니. 마지막 무렵엔 연수를 했으니 이제부턴 수업에 적용해서 쓰라는 명령도 잊지 않았다. 21세기 기술에 쌍팔년도 사고를 얹은 진정한 뉴트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는 마당에 자꾸 zoom으로 수업을 하라는 발상도 놀라웠다. 한 교실에서 모두 핸드폰을 들고 비대면 의사소통을 하라는 건가. 직접적인 접촉이 감소할 테니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수칙 지키기엔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기술 그 자체를 추구하는 노력도 가상했다. 나는 이제껏 기술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무엇을’ 나누고 소통할 것인지를 고민했고, 그게 현장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단이 목적을 전복하는 짜릿한 발상의 전환을 미처 하지 못하고 말이다. 소화가 안 되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그날의 메뉴는 뒤집어진 나의 속을 달래기 안성맞춤이었다.


닭죽. 소화는 잘 안되지만 속은 허해 막혀 있는 듯한 느낌 위에 주전부리를 집어넣는 비상식적인 행동이 반복되는 날들이 지속되었기에 준비한 도시락 메뉴였다. 집에는 삼계탕이 있었고, 대추, 마늘, 파, 생강, 밤, 양파 따위를 넉넉히 넣고 오랜 시간 푹푹 삶아 노오오오랗게 변한 국물에 불린 찹쌀을 넣고 다시 보글보글 끓였다. (물론 내가 아닌, 엄마가) 정성과 시간이 만들어낸 한 그릇 요리였다.


찰떡궁합인 오이지와 젓갈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삼켰다. 힘들여 씹지 않아도 넘어가는 게 좋았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내 안으로 음식이, 에너지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부드러운 감촉이 좋았다. 나를 뾰족하게 찌르지 않고 그저 다정하게 넘어가는 그 느낌이 울컥했다.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그 기운만으로도 까끌거리던 속이 누그러졌다. 향긋하고 구수한 향이 좋았다. 갖가지 재료들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 만들어낸 향 같아서, 수많은 손길과 에너지가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아서 거북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토종닭이 내 롤모델이야.”

“......?”

“지방이 거의 없어. 근육질이야. 살도 별로 없어.”


배가 부르고 마음이 차오르니 실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직장에서 롤모델을 찾고 싶다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곳에서의 나는 저런 모습이겠구나, 나도 저런 모습으로 늙어가야지, 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을 갖고 싶다고. 그 말을 듣고 나서 줄곧 나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찾았다. 토종닭. 차마 웃을 수 없는 농담이었지만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공간을 웃으며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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