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배운 단어를 실제로 만나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좋아했다. 소설부터 신화, 민담, 에세이까지 쉽고 재미난 글이라면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읽어댔다. 그때 스쳤던 수많은 단어들 중이국적인 것들이 꽤 있었다. 집시, 안달루시아, 시로코 같은. 자라면서 차차 익숙해진 어휘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낯선 느낌이 완전히 지워지진 않은 말들도 제법 많았다. 여전히 서걱대는 것 중 하나를 눈앞에 마주했다. 안달루시아 지방 집시들의 플라멩코.
처음 플라멩코를 만난 건 거리 위에서였다. 따사로이 부서지는 햇살을 가르며 정처 없이 걷는 발걸음 위로 들썩이는 무언가가 스쳤다. 엇박인 듯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박수소리와 추임새, 경쾌한 듯 구슬픈 기타 소리였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을 따라갔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더미 사이로 강렬하게 휘날리는 붉은 치마 자락이 보였다. 틈바구니를 비집고 더 가까이 바짝 다가갔다. 현란한 발놀림에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졌고, 정교한 손끝과 얼굴에서 다양한 감정이 묻어났다.
어릴 적 책에서 보았던, 아주 오랜 기억을 얼핏 끄집어냈다. 집시, 애환, 유랑, 자유, 집단 등등... 불확실하게 둥둥 떠오르는 단어들이 거리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집시에 대해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알 것만 같았다. 그들이 온몸으로 만들어내는 음악과 춤을 통해서. 어쩌면 자유로운 영혼, 어쩌면 정착할 수 없는 저소득층, 어쩌면 유랑할 수밖에 없던 무국적자, 어쩌면 그저 힘겨운 삶 속에서 비틀대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우리일지도 모르는 집시. 그들의 플라멩코는 그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담고 있었다. 불쑥 눈물이 날 뻔했다.
과거엔 그라나라 사크로몬테에서는 집시들이 동굴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 안에서 춤과 노래가 펼쳐졌고, 그 전통을 하나의 상품으로 발전시켜 동굴 플라멩코 공연이 유명한 관광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궁금했다. 거리의 플라멩코와 동굴 안에서 펼쳐지는 플라멩코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낮의 너른 공간에 늘어놓는 음악과 어둠 속에서 퍼지는 선율은 어떻게 다르게 울리는지.
어스름이 짙어갈 무렵, 동굴로 들어갔다. 무료로 제공된 와인 한 잔을 들고 앉아 바로 눈앞에서 움직이는 노랫소리와 박자를 들었다. 거리 공연에서 보지 못했던 남성 댄서도 있었고, 고령의 여인 댄서의 춤사위도 볼 수 있었다. 분명 같은 무대에서 같은 음악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성별에 따라, 연령에 따라, 개별 존재의 특성에 따라 무척 다르게 다가왔다. 비단 외형적인 조건에 의한 차이가 아니었다. 그가 지나온 삶의 궤적에 따라 쌓아 올린 감정의 결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무늬였다. 그들이 만들어 낸 같으면서도 다른 감정의 파장이 나만의 길고 긴 감정의 건반을 한 두 개씩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그 모든 아름다움과 감동은 본능 속에 침전하고 말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를 이동하고 하루 종일 걷다 와인까지 한 잔 걸친 나의 몸은 정직했다. 노곤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한과 슬픔의 자락도 몸에 직접 퍼지는 추위와 허리의 고통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피로했다. 나는 감탄과 공감 언저리쯤 감정의 뭉치들을 안고 잠 속으로 미끄러졌다. 탁탁탁. 거친 소리에 눈을 떠보니 내 앞에서 노련한 은발의 댄서가 음악에 맞춰 강하게 손뼉을 쳤다. 나를 노려보면서. 아니, 바라보면서.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따라서 손뼉을 쳤다. 박자에 맞춰 고개가 자꾸 떨궈졌다.
죄송해요. 믿기지 않겠지만... 그래도 공연은 정말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