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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음식 열전

중독의 맛, 투론과 츄러스

by 정담아

단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날에도 단 것보단 매운 것을 외친다. 디저트류를 좋아하지만, 나의 마음은 단 것 그 자체보다는 탄수화물에 스민 단 맛에 방점이 찍힌다. 그러니까, 대책 없고 눈치 없는 단맛이 아닌, 밀당에 능수능란한 단맛을 좋아한다. 밀크 초콜릿처럼 온몸으로 외치는 단 맛보다는 다크 초콜릿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을 선호한달까.


스페인 거리에서 디저트 가게 종업원이 나눠준 단맛은 강렬했다. 입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 빈틈없이 가득, 본인의 정체성을 외쳐댔다. 나는 달아요! 나는 정말 달아요! 정체는 투론이었다. 절대, 다시는 먹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또 한 번의 강렬함 역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츄러스. 사실 내키진 않았다. 기름을 잔뜩 머금은 채 설탕에 한바탕 굴러 온몸에 달디 단 맛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것도, 가끔씩 초코나 크림을 품어서 극화되는 느끼함과 단맛도 부담스러웠다. 그 맛을 떠올리니 먹기도 전에 조금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츄러스를 먹자는 친구의 의견에 동의한 건 스페인이니까. 도시마다 츄러스 맛집 하나씩은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는 츄러스의 고장에서 츄러스를 먹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우리의 첫 츄러스는 그라나다였다.


내 기억 속 츄러스는 놀이공원, 극장, 길가의 작은 가게에서 받아 들고 먹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츄러스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다른 움직에 곁들여지는 양념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곳은 달랐다. 츄러스 자제가 추인공이었다. 츄러스만을 위한 가게에 들어갔다. 안은 이미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츄러스와 핫초코를 주문했다. 접시 가득 두툼한 츄러스와 앙증맞은 컵 하나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생김새부터 익히 알고 있던 것과 영 달랐다. 겉표면이 매끈했으며 더 두툼했다. 한국의 츄러스가 바삭-이라면, 스페인의 츄러스는 폭신-이었다. 무엇보다 설탕가루가 없었다!


한껏 부푼 츄러스 한 개를, 잔뜩 부푼 마음으로 집어 물었다. 첫인상과 달리 바삭- 했다. 기름기를 머금고 있으면서도 눅눅하지 않았다. 기름으로 표면만 코팅한 듯 겉은 바삭했지만 공기를 품고 있는 속은 폭신했다. 짭조름함을 머금은 탄수화물 맛이 났다. 핫초코가 존재하는 이유가 명확했다. 바삭하고도 폭신한 츄러스를 찐득한 초코에 푹 찍어 베어 물었다. 슝슝 뚫린 공기층에 초콜릿의 단맛이 살짝 스미면서 단짠의 하모니를 이뤄냈다. 잠시 스치다 부서지는 둘의 조합은 질척대지 않았다. 깔끔했다.


그 후로 종종 두 단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찐득하고 강렬한 투론의 단맛도, 묵직하면서도 폭신한 츄러스의 단맛도. 거리를 지나다 가게 앞에서 직원이 나누어주는 투론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때때로 가게에 들어가 시식용으로 진열된 투론을 한 두 개씩 집어 먹기도 했다. 들어갈 때마다 다른 종류를 골라 들며 한국으로 데려갈 후보를 추리기도 했다.


츄러스의 경우는 달랐다. 집까지 사갈 수도 없고, 시식용도 없는 귀한 몸이었다. 도도한 몸을 만나러 기쁘게 마드리드의 츄러스 가게를 찾았다. 아주 오래된 집이라고 했다. 그곳은 츄러스와 포라스 중 선택을 해야 했기에 각각 하나씩 주문했다. 아, 둘이 하는 여행의 기쁨이란. 츄러스는 한국에서 봤던 것처럼 얇고 바삭한 모양이었고, 포라스는 그라나다에서 먹었던 그것이었다. 빵을 좋아하는 내 취향은 포라스! 바삭 폭신 달짝 짭짤. 그 한 입에 여행의 피로가 씻겨 내려갔다. 역시 기름지고 달고 짠 건 국적 불문 최고의 음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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