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여행기
2019년 여름, 미얀마 <길의 마음>에 실린 내용입니다.
시장에서 정신없이 사람과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니 카페 오픈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정처 없이 걷던 발걸음을 고쳐 목적지를 향해 내디뎠다. 두근두근. 먹는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특성에 공간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밤새 조금씩 부풀어 오른 설렘이 가득, 있는 힘껏 차오른 상태였다. 낮고 작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너머로 몇 채의 건물들이 보였다. 출입문처럼 낮고 작으며, 다리처럼 나무로 지어진 것 같았다. 그곳까지 가는 공간은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그저 무성하게 난 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가꾸는 밭이었다.
카페로 사용되는 공간에 들어가니 흙, 나무 따위가 주는 아늑함이 느껴졌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차 종류의 상품들도 진열해두었다. 비건 카페라는 건 이미 구글링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공간 전반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메뉴판을 건네받았다. 카페 이름인 ‘Sprouting Seeds’ 바로 아래 적힌 ‘From little things, Big things grow’ 문구가 가슴을 쳤다. 그때 알았다. 난 이곳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한 뒤 그곳에서 운영하는 쿠킹 클래스를 예약해두었다. 시간이 꽤 많이 남았지만 나는 결정했다, 그곳에 계속 눌러앉아 있기로.
영어 울렁증과 심한 낯가림으로 빚어진 나는,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재주보다 말을 걸어오는 낯선 사람의 말을 끊는 재주가 훨씬 더 앞서기에, 그저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책을 읽고 멍을 때리며. 그때 유창한 영어에 쾌활한 사교성으로 채워진 손님과 주인의 대화가 들렸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낯선 이들이 나의 궁금증을 조금 풀어주었다. 물론 그것은 영어였으므로, 내가 만든 오해들이 여기저기 뒤섞여 있겠지만. 대충 짐작하기론 모국에서 교사였던 서양인 사장님은 외국 여행 중 태국을 방문했었고 그러다가 미얀마에 정착하게 되었다. 카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으로 그들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직접 작물을 재배하고 그것을 통해 비건 음식을 만들고 있으며, 지역에서 청소년들에게 이것들을 가르치는 센터도 운영 중인 듯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역시 영어에 대한 열정이었다. 늘 외국 여행할 때마다 타올랐다가 귀국하는 순간 사그라드는 그 열정. 한때는 영문학도를 꿈꿀 만큼 영어를 좋아했다는 게 전생이었나 싶을 정도로 어느새 영어가 싫어졌지만, 외국에 나가면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싶은 열망이 들끓는다. 물론 낯가림 탓에 낯선 사람들과 대화 시작 자체를 잘하지 못하지만 외국이라는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과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가진 자유로움 때문에 간간이 대화의 기회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때마다 대화를 이어나가면서도 답답함이 밀려온다. 더 깊이, 더 명확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통해서 접하는 정보라는 게 얼마나 편파적이고 한정적인지 알지만 동시에 그를 통해 알게 되는 세계가 얼마나 다채롭고 진정성 있는지도 알기에.
또 하나의 생각은 이곳에도 역시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각국의 특성을 뭉개버린 채 하나로 묶어 일반화하는 걸 경계해야겠지만, 아시아 전반의 지역에서 마주하는 지배적인 느낌은 소위 선진국을 향한 움직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안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걸, 다른 싹을 틔우기 위해서 뿌려지는 씨앗들이 있다는 걸 놓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싹을 위해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장님의 표정 속에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얼굴과 몸짓에서 배어 나오는 여유에서 그 실마리를 조금 찾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기. 일단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중이니 그것을 통해 어떤 싹을 틔우고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어갈지는 지금 뿌리고 있는 씨앗들에 물을 주면서 차차 고민해 볼 일이다.
그들의 대화가 사라지고 나서 카페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늘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에만 익숙했기에 조금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 고요함을 채우고 있는 것은 적막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양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창을 때리는 낮은 빗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스타카토 빗소리, 흙바닥에 떨어지는 비의 둔탁한 소리, 웅덩이 속으로 다이빙하는 빗줄기의 경쾌한 소리... 도시의 소음에 가려져 듣지 못했던,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비의 다양한 변주곡들이 들려왔다. 바람 역시 이에 뒤지지 않았다. 커다란 나뭇잎끼리 서로 치고받게 하며 훌륭한 타악기 연주를 만들었고, 허공을 휘감고 창문을 통과하며 높지만 경박하지 않은 관악기 소리도 빚어냈다. 아주 기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멍하니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내게 고요히 찾아와 속삭이는 연주가 반가웠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작정 앉아 있어 본 게 얼마 만인지. 자꾸 핸드폰을 매만지고 시간을 확인하려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권리를 넘어서 능력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 같은 초조함. 그것이 나를 바삐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아니었을까. 시간을 촘촘하게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을 듬성듬성 비워내고 그 자리에 나를 넣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러면 오늘같이 비와 바람이 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혹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