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담아 Apr 22. 2022

스트레스엔 맵단의 진수, 떡볶이

소소한 일탈, 떡볶이 회동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초근(초과근무) 달기. 특별한 날이 아니면 야근이 일상인 시즌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가 되면 모든 게 불씨가 된다. 분노의 불씨.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불꽃이 튀어 오르며 짜증이 화르르 쉽게 타오른다. 나를 슬프게 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는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은 찐다는 것. 힘들어서 부은 거라 주장해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 스트레스에 하루 종일 소소한 군것질거리를 부스럭거리며 입에 쑤셔 넣는 것은 물론 분노 게이지가 폭발하는 저녁쯤엔 결국 폭주해버리는 것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잠이 들면서 내일은 자제해야지,라고 다짐해 보지만 늘 다음날 오후쯤이면 새로운 자아와 고군분투한다.


‘살고 봐야지. 그냥 먹어! 마음의 평화가 중요해.’

‘내일 또 후회할래? 위장도 너처럼 노예로 만들래? 쉬게 좀 하자.’


오후까진 그래도 두 자아가 팽팽히 맞서는지라 다짐한다. 그래, 야근하면서 가볍게 먹고 집에 가서는 그냥 자자. 하지만 퇴근 후가 되면 이미 한쪽이 승리해 있고, 늘 ‘안 먹고 자기’였던 그날의 목표는 무너지고 ‘먹고 자는’ 내가 침대 위에 덩그러니 누워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대놓고 폭주를 계획하는 날이 있다. 가령 이런 날.


야근을 위해 남는 그날, 일탈을 꿈꿨다. 함께할 동지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지만 정작 서로의 출근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동료 V. 빡빡한 업무 때문에 근무시간에 수다를 떨 여유는 없고 어쩌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운 사이랄까. 우리의 일탈은 야식 배달, 목표는 떡볶이와 튀김이었다. 내가 업무를 마무리하는 동안 V가 음식을 주문했다.


일용할 양식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매운 떡볶이 한가득, 앙증맞은 김말이와 만두, 어묵 튀김들도 보였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 떡볶이는 자고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눈으로도 대강의 맛이 평가되기에. 물론 그 기준은 내 취향이지만. 진한 붉은빛을 띠어야 한다. 색이 진할수록 양념이 맵고 진한 맛을 낸다. 하지만 갈색 빛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조리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산뜻한 맛이 없기 때문이다. 질감도 중요하다. 국물이 너무 묽으면 양념이 떡에 제대로 베지 않아 맛이 없다. 양념이 떡 주변을 어떤 모습으로 감싸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적당한 끈기를 가지고 주르륵 흐르지 않으면서 떡에 딱 들러붙지 않는 중용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국물은 넉넉할수록 좋다. 튀김을 찍어먹어야 하니까.


한 입 베어 물었다. 맛도 합격.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배가 금세 차올랐지만 상관없었다. 먹었다. 또 먹었다. 행복했다. 찰지게 씹어대던 상사의 만행과 아이들의 분노 자극 행위들도 잠시 안녕했다. 너무 매워서 정신이 혼미했다. 쓰흡 하아 허어 헤에 혓바닥을 내밀고 콧물을 닦아내면서도 열심히 먹었다. 매운맛을 견딜 수 없을 때쯤 V가 싸온 후무스를 퍼먹으며 아찔함을 잠시 달랬다. 날카로움과 뭉근함 사이를 오가며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풉. 한쪽이 갑자기 터뜨린 웃음을 통해서 깨달았다. 우리 사이에 꽤 정적이 흐르고 있었음을. 그럼에도 위로받았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아무 말을 듣지 않는 순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혼미해진 정신 탓에 이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고 저 세상으로 떠난 그 순간이 오히려 고마웠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헥헥대며 아이스크림 콘으로 마무리를 했다.


1.5킬로가 쪘다. 내일은 조금 걸어서 출근을 해봐야지,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흔하지만 특별한, 토마토 달걀 볶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