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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Apr 26. 2022

알고 있지만 계속 알고 싶은 맛, 참치마요덮밥

여기저기 잘 어울리지만 정체성을 잃지 않는 유연한 단단함을 꿈꾸며

모든 게 낯설고 설익었던 시절, 빨리 익숙해지고 싶었다. 무림의 고수처럼 평온한 표정을 일을 척척해내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을 보며 감탄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업무량을 보며 자괴감에 허우적댔다. 매일 밤 무능력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잠을 설쳐댔다. 한 시라도 빨리 적응하고 싶었고,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소리 없는 아우성을 마음에 품어야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오래, 더 자주 파르르거렸다. 몇 년에 걸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눈물과 분노를 삼켜내며 조금씩 일터에 익숙해져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일은 익어가지만 사람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걸. 


처음엔 모두 좋아 보였다. 물론 애초부터 강약약강의 저급한 취향을 드러냈던 하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냥 사람이었으니까. 부담스러운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적당한 친절과 영리한 거리를 두었다. 상식적인 수준으로 날 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가 바뀌기도 하고, 그 범위가 넓어지기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얽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이 맨 얼굴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다양한 유형의 얼굴이 있었다. 처음 겪은 유형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논리랍시며 차갑고 이성적인 표정으로 던지는 얼굴이었다. 가령 미리 공지했던 기한이 지나고 나서 ‘아이들을 위한 일’이니 공지 사항을 번복하고 기한을 연장하라거나 모유 수유하느라 힘드니 특정 업무는 못하겠다는 식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일을 떠넘기는 파렴치한들에 비하면 성의가 있는 편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냥’을 부탁할 수 있는 뻔뻔함과 상대가 당연히 모든 일을 떠안게 만드는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다. 


또 다른 유형의 인간은 숟가락 얹기다. 일을 다 끝냈는데 마지막 순간에 한 번 쓱 와서는 갑자기 본인이 처음부터 한 것처럼 진두지휘하는 인간. 아이들 데리고 하는 행사를 위해 몇 날 며칠을 준비할 땐 코빼기도 안 비추다가 무대 서기 직전에 와서 정렬을 맞추고 있다든가, 학생과 몇 달 동안 온갖 난리를 부리며 써 내려간 자소서를 원서 접수 직전에 본인이 좀 봐주겠다고 나서는 경우랄까. 대부분이 나약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 하나쯤은 붙들고 사니까, 싶다가도 ‘열 받게 찔러대지 말고 방패로만 쓰라고 이 새끼들아!!’라고 빽 소리를 지르고 싶다. 


그들이 찔러댄 공격으로 분노가 치밀 땐 오히려 나은 편이다.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검은 얼굴을 보게 될 때면 서글퍼진다. 물론 혼자 쉽게 사람을 믿어버리는 나의 성급함 탓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와, 서로 얽히고설킨 사내 정치의 실체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된 탓도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땐 그저 모든 게 내 탓이구나, 했지만 이젠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게 되었으니까. 사람은 오래될수록 좋은 법이라던데, 나는 새로운 사람보단 오래 본 사람을 좋아하는데. 왜 시간이 갈수록 익숙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들 때문에 서글퍼지는 날이 늘어만 가는지, 슬퍼졌다. 웃으면서 궁금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자신의 이야기를 굳이 들려주던, 본인이 싸 온 음식 한쪽을 기어이 내 손에 쥐어 주던 사람이 얼굴을 바꾸며 자신의 실수를 내게 덮어 씌우던 날, 나는 참치마요덮밥을 야무지게 비볐다. 


참치마요덮밥은 그 맛에 비해 재료도, 조리법도 간단해 자취하던 시절 종종 해 먹던 음식이었다. 기름을 꼭 짠 참치, 잘게 썬 양파에 마요네즈를 넣고 섞었다. 느끼함을 잡기 위해 채 썬 양파에 간장, 물, 올리고당을 넣고 졸였다. 마지막으로 달걀 스크램블을 한 뒤 밥, 참치, 양파, 달걀을 담았다. 디스플레이엔 도무지 소질이 없는 나였지만 색만으로 충분히 정갈하고 예뻤다. 아주 잠깐 눈으로 맛보면서 뿌듯함이 밀려왔지만 바로 카오스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잘 섞일수록 맛있으므로. 참치마요의 느끼함을 양파의 알싸함이 잡아줬고, 달달짭쪼름한 갈색 양파의 활약으로 맛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간장 양념의 맛이 강하게 삐쭉 튀어나오려고 할 때면 밥의 구수함과 달걀의 고소함이 자극을 감쌌다. 익숙하지만 매번 만족스러운, 이미 알고 있지만 자꾸만 더 경험하고 싶은 맛이었다.  


문득, 주먹밥, 샌드위치, 김밥, 덮밥 어디서든 잘 어울리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참치마요가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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