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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May 23. 2022

떡을 좋아하면 정말 미련한가요?

업무 배정의 부당함과 권력의 상관관계

연말, 연초가 되면 업무 분장으로 그 좁은 직장이 술렁인다. 메신저로 전체 메시지를 뿌려대며 부당함을 토로하거나, 직접 관리자에게 찾아가 읍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꽤 민감한 사안임은 분명한 듯 보인다. 물론 제3자가 보기엔 당사자들이 호소하는 부당함은 객관적이라기보다 주관적인 판단이다. 비정규직이거나 나이가 어린 경우엔 부당함이 피해가니까. 부당함은 권력이 있는 자들만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니까. 그러므로 나는 그저 앞에 떨어진 업무를 숙명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연초에 정리된 업무는 그나마 양반이다. 견딜 수 없는 건 경계가 애매한 업무다.


A부서에 속한 내가 진행하던 업무는 B부서와 묘하게 겹쳐 있었다. 일을 진행할 때 A부장의 오케이를 받으면서도 B부장의 간섭도 감내해야 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게 주어진 일을 마치고 다음 단계를 처리해야 할 B부서로 일을 넘겼더니, B부서에서 그 일의 담당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내 직속인 A부장에게 보고했더니 직접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지금 누구 업무인지 따지는 거보단 쌤이 하는 게 빠르지 않겠어?”

아니, 아니, 아니! 따지는 게 더 좋을 거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나한테 지시하는 것보다 당신이 하는 게 빠르지 않겠어요? 애초에 담당 업무가 아니라 세부 사항을 모르는 나를 위해 B부장에게 물어 정보를 다시 전달해주는 과정을 생략하고, B부장이 바로 하는 게 빠를 텐데?   


물론 지렁이 따위가 꿈틀거려봤자 결론은 하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거지 같은 건 네가 다 해라. 내가 진행했던 업무였기에, 담당이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되면 내 책임이 있다고 느껴졌기에, 내가 마무리했지만 기분이 영 별로였다. 자극적인 게 필요했지만, 하필 귀찮아서 냉동실에 있던 떡을 점심으로 들고 온 날이었다.


“떡 좋아하면 미련하다던데. 꼭 그런 것도 아닌가봐?”

떡이 들린 비닐봉지를 내밀며 할머니는 꼭 같은 말씀을 내뱉으셨다. 떡을 좋아하는 손녀가, 미련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떡을 먹을 때마다 귀에 맴돌던 그 말이, 그날따라 유난히 크고 오래 울렸다.   


떡을 좋아하면 미련하다던데. 맞아요. 전 미련한가 봐요. 그래서 이리저리 뒤치다꺼리나 하고 사나 봐요. 내 일이 아니라고 부당함을 호소해봤자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해요. 그저 전 몹쓸 애가 되는 걸요. 결국 하게 될 일이라면 따지기 좋아하고 할 말 다 하는 애로 낙인찍히는 것보단 입 다물고 조용히 처리해서 착한 이미지라도 얻는 게 좋을까요? 그런데 그러면 저는 진짜 속병 나서 죽을 것 같거든요. 떡을 좋아하면 미련한 게 진짜 맞나 봐요. 떡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떡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다 먹었어요. 화가 나면 맛은 안 느껴져도 질감과 무게감은 여전히, 아니 더욱더 필요하니까요. 근데요, 할머니, 이제부터 전 떡을 싫어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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