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드 빈티지카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오랫동안 어른으로 살았는데,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이미 내 삶은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 범주에서 살짝 빗겨 나 있었으니까. 탄탄한 월급, 소속, 결혼, 출산, 육아 같은. 처음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생의 낙오자가 된 것만 같아 고개가 자꾸 아래로 숙여졌지만, 이제는 그럼에도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유 정도는 챙길 만큼 익숙해졌다. 하지만 남과 다르다는 사실이, 그들과 같은 세계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자괴감으로 이어질 때가 가끔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차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차가 없다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없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차는 삶의 패턴을 바꾸는 힘이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자동차라는 물건이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는 '기능'이 갖고 싶었다. 차를 소유함으로써 넓어지는 행동반경,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자유,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던 온갖 짐으로부터의 해방감이 탐났다. 친구들이 말하는 고속도로나 주차, 기름값, 차종 따위의 주제에 슬쩍 말을 얹고도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오랜 장롱 면허를 끝내기로.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그것이었다. 돈!!!
"차 끌고 다닐 능력만 있어봐라. 내가 당장 사준다."
동거인이자 집주인인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그 말을 확 잡아채기로 했다. 자고로 돈이 없는 자가 갖춰야 할 미덕은 뻔뻔함이니까. 최대한 어깨를 펴고 말했다. 차를 사야겠다고. 엄마는 더 당당한 자태로 받아쳤다. '넌 능력이 없다!'라고. 게다가 직장을 때려치운 직후였기에 엄마의 주장엔 한껏 힘이 실렸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더 이상 불안정한 상황을 핑계로 어른의 세계로 진입을 미루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번엔 기필코 한 발짝 들여놓으리라 결심했으니까. 그래서 열변을 토했다.
어차피 모든 게 불안정한 이 시대에 안정적인 수입 자체가 환상이다! 일단 지르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그러니까 난 차를 사겠다! 차를 사달라!
팽팽한 싸움에서 먼저 돌아선 건 나였다. 서러움이 밀려왔다.이 나이에 내 물건 하나 사는 걸 일일이 보고 하고 컨펌받아야 하는 거야?(물론 사준다고 해서 말한 거임) 아무튼!! 사준다고 할 땐 언제고, 능력이 없어서 사줄 수가 없다는 둥, 첫 할부금을 내준다는 의미였다는 둥, 말을 뱅뱅 돌리기만 하는 모습에 제대로 빈정이 상해버린 난, 해선 안 될 말을 해버렸다.
"됐어. 엄마한테 뭘 바래?! 내 퇴직금으로 살 거야!"
하아-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을 뼈에 새겼어야 했다. 결국 큰소리친 대가로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다. 흠 뭐 언제는 안 그랬던가.
어쩔 수 없이 차에 대해서는 별 걸 다 모르는 나의 무지를 채우기 위해 낯선 단어를 하나씩 검색하기 시작했다. suv와 세단, 가솔린과 경유, 자연흡기와 터보 등등... 아오! 오래 걸리는 시간보다 더 화가 났던 건 그런 정보들이 명확한 선택지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한 거라고는 구입 시기뿐. 정작 어떤 차를 사야 할지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평소 자주 도움을 받았던 집단 지성의 힘도 이번만큼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좁디좁은 인맥의 스펙트럼에서 자동차 전문가를 찾기도 쉽지 않았고, 그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분명한 건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길을 잃었다는 것.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쉴 새 없이 뒤집어졌다. 친구의 중고차 매입에서 새 차 구매로 마음을 바꾸었다가, 다시 중고차 사이트를 뒤적거렸고, 소형 suv를 잔뜩 검색했다가 세단으로 바뀌었다가...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마음이 팔랑거렸다. 그리고 결국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었다. 도저히 못 해 먹겠다!!
반전은 의외의 곳에서 일어났다. 어떤 차를 살지 모르지만 차는 사기로 했기에, 운전 연수가 필요했다. 연수비를 아낄 겸 아빠에게 운전을 배우기로 했다. 서너 번 정도 함께 차를 탔다. 한없는 침묵을 깨기 위해 조수석에 앉은 아빠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내가 아빠 차를 받고, 아빠가 SUV로 바꿀래? 아니면..."
내가 suv를 사서 끌다가 나중에 아빠 차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아빠에게 차를 넘기고 다시 새 차로 바꾸는 건 어떠냐는 두 번째 선택지는 입 밖으로 나올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날로 아빠는 모든 걸 끝냈으니까. 구입할 신차 같은 중고차를 바로 정했고, 며칠 뒤 아빠의 오래된 차는 내게 넘어왔다.
어쩌다 보니 내 앞에 안팎으로 낡은, 오랜 시간 아주 많은 길을 달렸던 노쇠한 차가,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굴러들어 왔다. 그렇다. 우리 집에 만연한 '공짜는 없다! 거래는 확실하게!'라는 비합리적인 합리성에 의해 비상식적인 불공정거래가 일어났다. 지불 몫을 능력과 책임에 비례해 할당했다고나 할까. 가족의 일이라는 게 늘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데다, 얹혀살면서 많은 혜택을 입고 있는 지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다만, 걱정은 한 가지. 아빠의 차가 오래 버텨줄 것인가,였다.
"19만이라고? 진심? 그렇게 많이 뛰었다고?"
아빠 차의 상태를 들은 친구들은 결사반대를 하고 나섰다. 돈 받을 수 있을 때 얼른 팔아 치워 버리고 아무 중고차나 사라고 조언했다. 어떤 차를 사도 그 차보단 나을 거라고.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그런가. 내가 찜찜했던 게 합리적인 불안이었던 건가. 아빠는 ‘내가 딸한테 사기를 치겠냐’고 펄쩍 뛰었다. 연식이 오래되고 많이 달렸지만 무사고에 깨끗하게 몰아서 멀쩡하다고 했다. 양쪽 모두 진심이었고, 모두에게 자신의 주장이 진실인 게 문제였다. 누구의 진실이 사실인지 알 수 없다는 건 가장 큰 문제였다. 내게 차란 그저 고장 없이 잘 굴러만 가면 되었으므로, 나와 3년만 버텨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3년은커녕 1년도 버틸 수 없을 거라고 말했고, 부모님은 3년은 무슨 5년도 버틸 수 있다고 반박했다. 내 판단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슬금슬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유와 해방감을 얻고 싶었는데, 이 모든 상황은 나를 더욱 옥죄어 올뿐이었으니까. 왜 내가 내 돈 들여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화가 났다. 똥차든 새 차든 아무 거나 끌고 당장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입안이 헐었다.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은 이토록 힘든 것일까? 나는 씽씽 자유를 타고 달릴 수 있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