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하나 생겼을 뿐인데
새로운 것들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신제품이나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는 아니고, 낯선 활동이나 영역을 들여다 보길 좋아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는 것, 그곳의 새로운 질서와 시선을 마주하는 게 좋다. 그건 종종 내게 익숙했던 것들을 흔들어 대기도 하니까. 그 여진이 빚는 작은 떨림과, 그렇게 새로이 정비되는 질서가 좋다.
자동차도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분명 30년 넘게 본 세상이었지만, 마치 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을 차에서 보냈고, 그중 수많은 시간은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 지켜봤는데, 운전석에서 보는 세상은 그것과 전혀 달랐다. 사실 조수석에 앉든, 버스 맨 앞자리에 앉든 내가 눈에 담은 건 주변의 풍경이었지만 그 경치엔 도로나 신호등, 표지판, 네비 화면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두 다리에 의지했던 생에 네 개의 바퀴가 등장하자, 매일 보는 신호등마저 새로웠다. 사실 그동안 내게 중요한 건 빨간 등, 파란 등 두 개뿐이었다. 좌회전, 우회전은 관심이 없었으니까. 방향을 언제든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뚜벅이에게 그런 신호가 중요 할리 없으니까. 하지만 뚜벅이에서 운전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부여되자 물음표 투성이의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우회전은 아무 때나 해도 돼?
비보호 좌회전은 아무 때나 해도 돼?
정차는 아무 데서 해도 돼?
가장 궁금한 건 필기시험 볼 때 내가 이런 걸 공부했었는지와, 세상의 모든 운전자들은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다 배웠지,였다. 운전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세상의 모든 운전자가 위대해 보였다. 차 없이 걸을 때도 도로 표지판을 유심히 보면서 새로운 의문들을 친구나 인터넷에 물어봤다. 물론 그 모든 대답들이 운전을 할 때 기억이 날까 조금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아무에게 묻지 않았지만 스스로 깨닫게 된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왜 매번 아스팔트를 새롭게 까는지 같은 것들. 시꺼먼 찌꺼기들이 메스꺼운 냄새를 풀풀 풍기며 끈적한 검은 액체를 줄줄 흘려보내는 풍경을 볼 때마다 코를 쥐며 생각했었다. 남아도는 예산을 소비하기 위해 쓸데없이 갈아엎는 보도블록 같은 예산낭비라고. 그런데 운전을 하다 보니 고른 표면이 굉장히 중요했다. 개별 상황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모든 현장을 싸잡아 불필요한 것으로 몰았던 나의 무지와 오만을, 핸들 앞에서 반성했다. 가장 격렬하게 반성했던 때는 시골길을 달리던 어느 날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지 얼마 되어 강원도에 가게 된 어느 날이었다. 당연히 잘 알지 못하는 길이었고,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눈앞엔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낯섦이 펼쳐졌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한 좁은 폭에 심지어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길은 날 당황케 했다. 게다가 잠시 후 등장한 단단한 파이프와 움푹 파인 웅덩이의 콜라보까지.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직진뿐이었다. 양 옆은 논두렁으로 바로 이어졌으니까. 전진하는 차에서 덜컥- 불안한 소리가 났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소리의 실체와 마주한 건 잠시 후 마을 회관을 지났을 때였다. 정자에 두런두런 모여 계신 어르신들이 보였는데, 갑자기 내 차를 향해 손짓하더니 몇 분이 다가왔다. 이미 매우 느린 속도였던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여기 좀 봐봐. 눈알이 빠졌어!”
응? 눈알이 빠지다니. 어디가 눈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이 생겼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빠졌다’는 건 좋지 않은 의미니까. 당장에 튀어내려 어르신께서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차체 아랫부분이 조금 덜렁거리고, 안개등 한 짝이 빠져 있었다. 안개등처럼 노랗게 질려버린 내게 그들이 뭐라 뭐라 말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들어보니 본인들의 이야기였다. 진짜 서운하다는 둥, 그런 게 아니라는 둥, 구체적인 사건이 나오진 않았지만 분명 갈등의 언어였다. 아니, 나 불러 세워놓고 뭐 하는 거지. 덜렁대는 차보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더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그때, 한 할아버지께서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전선이었다. 그 선으로 덜렁대는 안개등을 고정시켰다. 그러면서도 시선과 말은 친구분을 향했다. 정말 서운하다고. 빠진 눈알을 고정시키는 내내 친구를 향해 아쉬운 말들을 던졌다. 그가 나를 바라본 건 응급처치를 마친 후였다. 그제야 나를 향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서울까진 괜찮을 거야.”
이 시크함이라니. 시크한데 너무 친절해. 이게 시골 인심인가. 아니면 여전히 세상은 아름다운 건가. 서울까지 오는 내내 마음을 살짝 졸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따뜻했다. 그리고 도로 정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끔은, 형편없는 풍경을 고르고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건 '사람'이라는 것도. 자동차 하나 생겼을 뿐인데, 새로운 세상이 내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