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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배운 언어, 깜빡이

초보 운전자의 비상등

by 정담아

무사고 10년. 면허를 갱신했지만 실은 도로 주행 시험 이후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다시 핸들을 잡기로 했을 때, 친구들은 연수를 권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끌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유는 많았다. 일단 귀찮았다. 호기심을 연료 삼아 움직이는 검색이 아니라 정보, 그것도 합리성을 기준으로 선별까지 거쳐야 한다는 사실에 이미 지쳤다. 낯선 사람에게 느끼는 불편함도 문제였다. 이것저것 검색을 하고 정보를 비교해야 하는 것도 귀찮은데, 낯선 이에게 연락을 하고 그 사람과의 어색한 만남까지 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불편했다. 벌써부터 긴장이 손과 발 끝을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아빠한테 배우기로.


문제는 아빠와도 꽤 어색한 사이라는 것. 가르침의 언어에 서툰 아빠와, 액셀과 브레이크 위치조차 기억 못 하는 나는 일단 각각 조수석과 운전석에 나란히 앉았다. 공터에서 시동을 걸고 앞으로 가고, 서고, 주차하는 연습을 한 뒤 도로로 나갔다. 도로에 진입한 나는 생각했다. 나 너무 빠른가? 슬쩍 계기판을 봤다. 무려 20km였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탔을 땐 시속 100km를 훌쩍 넘어가도 아무렇지 않던 나였는데, 심지어 느린 속도에 엄청난 답답함을 느꼈던 난데, 그런 내가 20km의 속도에 놀라다니. 속도를 확인한 뒤 더 놀란 나는, 조심스레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직진은 어렵지 않았다. 가끔 어린 학생들이 면허 없이 운전을 했다는 뉴스를 보면 ‘도대체 어떻게 운전을 하지?’라고 생각했었는데,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다른 차를 만났을 때였다.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데, 옆에 차들이 오면 참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말이 없던 아빠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깜빡이 켜."

"어떻게 켜지?"

"야, 넌 어떻게 면허를 땄냐?"

"옛날의 나한테 물어봐."


차 안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아빠의 어이없음으로 끝났다고나 할까. 난 아빠의 반응에 대꾸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당황과 침묵을 오가는 사이 좌회전, 우회전, 후방 주차, 전방주차, 차선 변경 따위를 익혀갔다.


아빠에게 배운 또 다른 하나는 운전자의 언어였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와 같은. 상대 차량의 배려로 차선 변경에 성공했을 때도, 뒤에서 오던 차를 미처 보지 못했을 때도 비상등을 깜빡이라고 했다. 그건 상대에게 나의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불투명한 쇳덩이가 보여주는 깜빡임이 마음에 들었다. 보이지 않은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고맙거나 미안한 일이 생길 때마다 보이지 않은 내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깜빡거렸다. 핸들에서 손을 떼는 것조차 힘들 땐 조수석에 앉아 있는 친구가 대신 눌러주기도 했다.


고맙거나 미안한 일은 참 많았다. 하지만 조금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까지 고마워야 하나. 뒤에서 보면, 쟨 뭐 저런 걸로 고맙대? 어이없네? 이러지 않을까. 하지만 막상 다른 차가 내게 보내는 깜빡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내 앞에 들어선 쇳덩이가 '실은 저 사람입니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익숙해지기 전엔 새로운 게 많았다. 서툴러 상처도, 쓰라림도 많았지만 설렘과 감동으로 채워지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차츰 세상이 몸과 마음에 익어가면서 커다란 설움도, 굉장한 기쁨도 줄어갔다. 그저 고만고만한 감정들만 굴러다녔다. 그런 밋밋한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안함과 고마움은 새삼스럽고 껄끄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조금 낯선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건 미안하다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잖아?


단단한 쇳덩이 뒤에 숨어 조금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리고 내게 익숙한 세상에서도.


오늘도 내게 머물러 준 나의 인연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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