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모아 놓은 글귀들
진정한 활자 중독자는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활자 중독자와 비슷한 그 무엇이라고 여겼던 나는 여러 문장들을 수집하곤 했다.
10대부터 모아 놓은 문장들이니 그 양이 상당했다.
필사를 해 놓은 것들도 있었으며, 정갈하게 파일로 정리해서 프린트를 해 놓은 것도 있었다.
한 때는 수집해 놓은 문장들을 들여다보며, 애지중지 보물처럼 보관하기도 했다.
서른 즈음 어느 날.
책상 안쪽에 두툼하게 쌓인 A4용지에 적힌 문장들을 쭉 읽어 본 나는, 그 프린트들을 가차 없이 버렸다.
보관해 두었던 파일 역시 삭제했다.
영영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아름다운 문장들이 그렇게 사라져 갔다.
마치 아주 값비싼 보석들을 망망대해 속에 떨어트려, 그것이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20대는 진정한 의미의 사춘기였다.
10대는 줄곧 모범생으로 반듯하게 살고자 했고 특별한 이벤트나 반항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10대에 사춘기를 거치지 않은 대가로 20대에 열병 같은 사춘기를 오래도록 앓았다.
그 문장들을 버린 것은 그런 과정 중에 하나였다.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는 데서 오는 깊은 슬픔과 모종의 희열(!?)에 취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중2병스러운 감성이니, 확실히 사춘기였다... 고 하겠다.
그 후로 나는 거의 10여 년 간 필사나 문장을 수집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40대에 들어선 어느 날, 나는 다시 조금씩 문장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예전 버릇은 버리지 못했는지, 나는 습관처럼 종종 그 문장들을 들여다보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필사 노트의 문장들 몇 개가 시리도록 눈에 밟힌다.
불과 몇 개월 전에도 평생 딩크로 살겠다며 수집해 놓은 문장들이었다.
그 문장들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도스토예프스키 [미성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모멸을 가한다.
존 바캇진, 마일라 카밧진 [카밧진 박사의 부모 마음공부]
- 자녀들은 그 존재만으로 부모의 참 본성을 일깨우며 부모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되비춘다.
- 자녀를 키우는 데는 장기간의 관심과 돌봄,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양육은 20년 가까이 진행되는 일종의 명상 수련회와 다름이 없다.
미리암 프리스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 부모 자신의 내면(스스로)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아이의 내면과의 관계에 각인된다.
- 모든 어린아이에겐 부모에게 인정받고 보호받고 싶은 건강한 갈망이 있다.
조건 없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진짜 자신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건강한 갈망이다.
그래서 거절당한 아이가 성인이 된 지금도 생존을 위해 애쓰고 싸우는 중인 것이다.
아이에게 친밀감, 포용, 안전은 사랑의 표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니코스 카잔자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나는 남자가 아니요? 당연히 결혼했소. 그러나 아내와 집, 아이들 모두가 재앙이오.
10살부터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30년이 지나 마흔이 넘어 그 마음이 흔들렸다.
서른쯤 모아 놓은 문장들은 모두 버렸고, 다시 모아 놓은 문장들을 보니 내 신념과 생각에 부합되는 문장들이 모여있었다.
한결같이 자녀를 갖는 데 깊이 생각하게 만들며, 종국에는 갖는 않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오고야 마는 문장들이 많았다.
이전에 모아놓은 문장들이 있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문장들보다 더 날것이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보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같은 문장이더라도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 역시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 책들을 지금 현재 다시 읽는다면, 나는 이전과 똑같은 문장들을 수집할까?
아니면 다른 문장들이 보일까?
지금의 마음 상태라면 똑같은 문장을 필사하면서도, 스스로를 응원하기 위한 문구를 하나쯤 더 적을 것 같긴 하다.
딩크의 삶을 접고 임신출산을 도전하기로 결심한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문장도 한 문장이 보인다.
폴커 키츠, 마누엘 투쉬 [스마트한 심리학 사용법]
- 완벽한 선택을 하겠다는 기대를 버려라.
어쩌면 그 어디에도 완벽한 선택이란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