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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Jan 25. 2019

온라인 인연들

나에게 최초의 소셜미디어는 블로그였다. 일이 그다지 바쁘지 않아 무료했던 어느 날, 나는 남들이 다 한다는 블로그를 한번 만들어 보았다. 그냥 뭔가를 끄적거릴, 온라인 일기장의 용도였다.  좋아하는 풍경이나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올려놓았고 또 좋아하는 한글단어를 닉네임으로 썼다. 참 소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나를 이웃으로 신청한 그들은 안부게시판에 서로 알고 지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글을 남기며 내가 쓴 글에 간단한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모니터 너머에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나도 이웃들의 블로그에 놀러갔다. 안부 글을 남겼고 댓글을 남겼다. 처음엔 예의바르게, 그런데 점점 어이없는 댓글을 내 딴에는 재미로 달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 댓글보다 좀 더 독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어느덧 경쟁이 붙은 이 댓글쟁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저 댓글을 달기 위해 서로의 블로그를 오고가게 되었다. 누군가는 우리들의 댓글 공박이 재미있다며 다른 게시판에 퍼가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었다. 결국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당연하지’ 게임을 인용한 댓글달기 게임까지 시도하여 무려 100개에 육박하는 댓글을 남기는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이 보여준 놀라운 팀워크였고 온라인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활발했던 블로그 활동이 잠잠해졌을 무렵, 이번엔 페이스북이 등장했다. 블로그보다는 뭔가 주최 측의 간섭이 많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페이스북을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일단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친구 신청이 들어왔다. 그래, 이 친구는 정말 오랜만이네! 아 이 사람, 그래 친구 신청을 받아줘야지! 그런데 뜻밖의 이름이 날아 들어왔다. 설마, 이분이? 이분이 그분인가 확인하기 위해 직접 그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기까지 했다. 사진을 보니 맞았다. 그런데 왜 나에게 친구 신청을 했을까? 이분은 옛 상사였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내내 서로가 ‘우린 왜 만났을까?’하는 의문을 일게 한 관계였다. 내가 회사를 떠나는 데에도 이분이 크게 일조를 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내게 한 짓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관계가 좋았든 나빴든 친구 리스트에 친구만 많으면 된다는 걸까. 웬만하면 다 친구신청을 받아들였지만 그분만은 거절했다.     


모르는 사람을 알아가는 게 블로그였다면 페이스북은 이렇듯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던 사람들을 다시 연결시키는 역할이었다. 그렇다보니 위의 에피소드처럼 달갑지 않은 사람이 추천되는 일이 종종 생겼다. 익명성 아래에 까불 수 있었던 블로그와는 달리 페이스북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시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놀아야 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계속 눈치가 보였다고나 할까. 그런 지인들의 시선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점이 불편했다. 슬슬 발을 빼려던 차에 문득 한 가지 기능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사람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와 펜팔로서 편지를 주고받았던 독일 친구가 궁금했다. 내가 고3이 되면서 공부에만 전념해야 했기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와의 연락을 끊었다. 고3이 되면 왜 펜팔 친구에게 편지를 못 쓴다는 것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 의견이라며 받아주었다. 그걸 보면 정말 속 깊은 친구였다.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두어 명이 나왔다. 그 중 한 명이 증명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놓았다. 그였다. 어릴 때 얼굴 그대로였다. 메시지를 보냈다. 목요일에 보냈는데 토요일 아침 답장이 도착했다. 어릴 적 꼼꼼하고 정확했던 성격 그대로 내 메시지를 늦게 읽은 이유, 자신의 페이스북 이용 성향, 자신의 현 상황까지 장문의 글을 그 작은 메시지 창 안에 담아 보내왔다.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지만, 그를 찾아 준 것만으로 마크 주커버그는 내게 은인이다.      


블로그, 페이스북을 거쳐 요즘엔 인스타그램을 이용한다. 큰 노력 없이 사진과 간단한 코멘트만 올리면 끝이라 간편하다. 일 년에 한 번을 못 보는 친구도 그곳에서는 안부를 전할 수 있다. 결국 모든 소셜 미디어는 좋은 것을 나누고 싶고, 잘한 것은  칭찬받고 싶고, 또 아픈 일엔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교류하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을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데에서 동일하다. 그렇게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소셜 미디어 활동이 인생의 낭비라고 매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댓글 확인하느라 눈앞의 사람에게 소홀하거나 사생활을 시시콜콜 생중계하는 건 지나친 게 아닐까. 또 아쉬운 것은 온라인에서 알게 된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친해진 사람들까지 이제는 대다수 온라인으로만 연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굳이 통화를 하면 촌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매일 ‘좋아요’를 누르느라 자주 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못 본 지 수년 넘은 친구들아, 너희들 그 사진처럼 정말 잘 살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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