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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Feb 01. 2019

왠지 끌리는 향기가 있는 사람

아이들은 친구가 생기면 이런다.

“우리 내일도 만나자!”

좋으면 매일 매일 만나는 것. 그것이 사람이 좋은 사람을 대하는 원래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참 멋진 사람이구나, 생각해도 상대의 시간을 배려하느라 또 내 삶이 쓸데없이 분주해서 1년에 한 번 간신히 보거나 심지어 수년간 못 만나기도 한다. 정작 어딘지 못마땅한 사람, 흉볼 것투성이인 사람만 자주 보게 된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얼마 전 친한 후배의 카톡 상태 메시지에서 ‘부친상’을 암시하는 내용을 발견했다. 잘 지내고 있으려니 방심하고 연락 못한 게 수년이었다.

“너무 급작스러워서 연락도 못했어. 언니는 별일 없지?……우리 이제 그때 그때 안부 묻고 전화하고 문자하며 살자……”

후배의 말이 진심으로 와 닿았다. 그렇게 통 못 보고 사는 사람들이 사실 한둘이 아니다.

  

수년 전 나는 마산의 한 신부님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나의 아름다운 성당기행>을 읽으신 후 좋으셨다며 꼭 한 번 마산에 놀러오라는 내용이었다. 그 제안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가 늦가을 무렵 방문하게 되었다. 노신부님과 함께 마들렌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자매님이 나를 반겨주셨다. 마들렌 자매님은 나보다 언니뻘 나이에 예쁘장한 미소를 가진 분이었다. 거하게 차려진 한상으로 사제관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저녁미사를 함께 올렸다. 그러고 나니  밤이 되었고 나는 마들렌 자매님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어야 했다. 초면에 그래도 되나 싶어 망설였지만 그분은 “페난하게(편안하게), 무조건 페난하게” 있다가 가면 된다고 하며 웃었다. 심지어 내게 안방을 내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엔 맛있는 커피와 고소한 토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 호텔의 아침상이 그처럼 평화롭고 따뜻할 수 있을까. 마음이 풀려 그동안 주변에서 느꼈던 일들, 서운했던 이야기를 하니 그분은 내게 “원래 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주는 법”이라고 했다. 그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알고 보니 세례를 받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수녀가 되기를 소망했던 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같이 있는 내내 평온하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침 미사를 위해 함께 집을 나섰을 무렵엔 이미 그녀의 말버릇 “우짜겠노?”를 내가 따라할 만큼 서로 가까워져 있었다.  

미사 후 신부님과 성당 직원분, 그리고 마들렌 자매님까지 우리 넷은 국화축제에도 가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도 갔다. 저녁까지 다시 대접받은 뒤 나는 서울로 오는 우등고속버스에 탔는데 대합실까지 배웅 나온 분은 마들렌 자매님이었다. 그녀는 집에 가거든 꼭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했다. 인천에서 취직하여 따로 살고 있다던 딸을 가진 엄마로서의 모습이 거기에서 보였다. 나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고 약속대로 문자를 보냈다. 곧바로 ‘잘 쉬라’는 답장이 왔다.     


그것이 2011년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 이후로 마산에는 다시 가지 못했다. 한번 갔던 곳인데 왜? 뭐가 어려워서 그럴까? 가보기 전엔 오히려 용기가 났었다. 그런데 이젠 마산까지 다녀오는 일이 하루로는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난번처럼 뻔뻔하게 폐를 끼치는 것도 다시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신부님이나 마들렌 자매님께 전할 수 있는 최선의 소식은 “저 이번에 마산 가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말고 다른 무엇이 필요할까. 그래서 섣불리 안부 인사도 보내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마들렌 자매님은 부활절, 추석, 성탄절, 신년이면 예쁜 그림으로만 인사를 청해 온다. 요즘은 뭐하냐? 바쁘냐? 책은 또 쓰냐? 마산엔 언제 다시 안 오느냐? 아무런 질문이 없다. 그냥 ‘잘 지내요? 나도 잘 지내요!’라는 마음만 전해 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의 향기, 사랑의 향기만 뿜어내는 분이다.


가끔 ‘나 이 정도면 좋은 사람이지? 매력적이지?’하고 스스로 내세우는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진짜 끌리는 사람은 이런 사람인 것 같다. 과장하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한결 같은 모습으로 촛불처럼 자기만의 빛을 내는 사람.           

언제쯤 나는 넉넉히 사흘 잡고 마산에 내려가 노신부님도 뵙고, 마들렌 자매님께도 만날까. “있잖아요, 그동안 제게 많은 일이 있었어요!” 하며 내 사연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게 될까.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또 마들렌 자매님이 알고 있는 맛집에 함께 가는 그런 날이 왔으면 정말 좋겠는데. 왜 시간만 빨리 흘러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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