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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Feb 16. 2019

친구보다 선생님이 좋았던 이유

애완동물을 들일 때 사람들은 흔히 새끼를 선호한다. 어릴 때부터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서라지만 일단은 어릴 때의 모습이 더 귀여워서가 아닐까. 하지만 나는 다 자란 상태의 동물을 더 좋아한다. 지금 키우고 있는 두 마리 고양이 중 첫째 녀석은 새끼 때의 모습을 아예 알지 못한 채 성묘일 때 입양했다. 그래도 내 눈엔 정말 사랑스러웠다.

둘째 고양이는 남편의 제안으로 태어난 지 2달 되었을 때 입양했지만 새끼라고 더 예뻐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고양이라는 동물의 아름다움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털도, 눈빛도, 몸의 실루엣도 미완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이 하얀 털북숭이가 완성된 아름다움을 뽐내게 되기를! 이 녀석에 대한 애정은 비교적 나중에 발현되었다. 완연한 성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내 마음도 흡족해졌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를 귀엽다고 생각한 지 그리 오래되지 못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뽀르뚜가 아저씨처럼 너그럽게 어린이와 우정을 쌓을 수 있을지는 자신 없다. 이런 성향이 어릴 때엔 더 심했다.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선생님에게 더 관심이 갔다. 어른이어야 완성된 존재라는 믿음이었고 그런 어른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단 한 명의 담임선생님께만 배워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은 그래서 불행했다. 내게 불친절한 선생님을 만나 배워야 하는 시절은 일 년 내내 암흑이었다. 1학년이 그랬고, 2학년은 최악이었고, 3학년도 크게 다르지 못했다.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최화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5학년은 중간에 전학을 가느라 1학기, 2학기 두 분의 선생님을 만났는데 두 분 다 ‘어른일수록 아이들 앞에선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간직하게 해주셨다. 6학년 때부터 학교가 좋아졌다. 중학교에 가니 더욱 좋았다. 각양각색의 선생님이 다채롭게 교실에 들어오시다니! 연예인이 들어와서 각자의 쇼를 진행하는 것만 같았다. 간혹 무섭거나 싫은 선생님이 계셔도 다른 좋은 선생님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느낌이 이어졌다. 학교가 좋았다. 선생님들이 좋았다. 물론 전부 다 좋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강렬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즐거웠다. 철학의 재미를 일깨워주신 선생님, 미술가의 꿈을 자극은 해주셨으나 내 실력에 대해선 가차 없이 냉정하셨던 선생님, 똑똑한 모범생이 자라서 교사가 되면 이렇게 된다는 선례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선생님, 어린 학생들 앞이지만 단 한 번도 반말을 꺼내지 않은 선생님…… 수학 시간 빼고 수업시간이 지루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때도 대학입시의 압박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여유가 있었다. 사교육이 완전히 금지된 시기여서 학생 입장에선 뜻하지 않게 누렸던 태평성대였을까. 아직은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조가 몸통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랬을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학교 선생님의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선생님 대신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주인공 예서의 일상을 지배하는 이는 수십억의 비용을 치른 이 입시 코디네이터다. 서울대 의대 합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입시 코디네이터는 상황에 따라 예서의 친구도 되었다가, 부모도 되었다가, 선생님도 되었다가 한다. 때로 부모는 그 입시 코디네이터에 의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비록 전교 1등이라는 결과를 얻어내지만 예서라는 아이의 학창시절이 나의 학창시절보다 행복한 것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훗날 그녀의 기억에 남는 고등학교는 그저 내신점수를 만들었던 곳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 간 곳 말이다.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인간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풍요로워진다. 학교란 그런 곳이다. 사춘기의 그 찬란한 과정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 단편적인 입시만 준비하는 곳이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예전의 선생님들을 그리워하는 내 이야기가 너무 지난 이야기, 전설 같은 이야기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 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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